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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섭의 신삼국유사] 19. ‘동이(東夷)’에 관한 단상
[윤용섭의 신삼국유사] 19. ‘동이(東夷)’에 관한 단상
  • 윤용섭 삼국유사사업본부장
  • 승인 2016년 10월 20일 21시 47분
  • 지면게재일 2016년 10월 21일 금요일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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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이 뛰어난 군자의 나라' 구이와 동일
전회(前回)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논어정의’에서는 구이(九夷)를 현도, 낙랑, 고려, 만식, 부유, 소가, 동도, 왜, 천비라 하고, ‘해동안홍기’에서는 구한(九韓)을 일본, 중화, 오월, 탁라, 응유, 말갈, 단국, 여진, 예맥라 하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동아시아의 동부지역 또는 거의 모든 지역이 포함된다. 심지어 중화와 일본까지 언급될 정도다. 구이의 영역과 위상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요순이나 하?은?주로 시대가 내려갈수록 그 활동범위가 축소되었다. ‘후한서‘ 동이열전(東夷列傳)에 다음의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서이(徐夷)가 참람되어 왕호를 칭하며 구이(九夷)를 거느리고 종주(宗周=서안 부근)를 쳐서 서쪽으로 황하상류에까지 이르렀다. 목왕(穆王)이 그 세력이 떨침을 두려워하여 동방 제후(諸侯)를 분리시켜 서언왕(徐偃王)에게 명(命)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서언왕이 다스린 국토가 500리였는데, 인의(仁義)를 행하니 육로로 와서 조회(朝會)하는 나라가 36국이나 되었다.”

구이가 서이를 중심으로 다시 뭉쳐 중국을 위협하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역시 『후한서』의 글이다.

“‘왕제(王制)’에 이르기를, ‘동방(東方)을 이(夷)라 한다’고 하였다. 이(夷)란 뿌리다. 그 뜻은, 이(夷)가 어질어서 생명을 좋아하므로 만물이 땅을 뿌리로 하여 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래서 군자가 죽지 않는 군자국(君子國)이 있기까지 하다. (중략) 동이는 거의 모두 토착민으로서,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기를 좋아하고, 관(冠)으로는 고깔을 쓰고 비단옷을 입으며, 그릇은 조두(俎豆)를 사용하였으니, 이른바 중국이 예(禮)를 잃으면 사이(四夷)에게서 구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이상을 종합할 때, 우리의 기록이 거의 없고 중국의 기록에 의존하다보니 문제점이 많고 해석상 우리에겐 상당히 불리하지만, 구이는 중국본토의 동부지역과 한반도에 광범히 하게 분포하면서 중원의 중국정부와 협력과 갈등의 관계에 있었다. 서주시대에 수도까지 위협할 정도였다. 그 민족성이 순후하고 어질며 모자를 쓰고 조두를 사용하는 등 예절이 뛰어나 군자의 나라라는 칭송을 받았다. 심지어 공자께서 건너와 사시려고 까지 한 적이 있다. 구이의 이(夷)는 원래 오랑캐라는 뜻이 없고 동방사람, 뿌리, 평평함, 어짐 등의 좋은 뜻을 지녔는데, 중국과의 경쟁관계에서 오랑캐라는 비천한 뜻으로도 사용하게 되었다. 참고로 저 유명한 관중의 이름이 ‘관이오(管夷吾)’인데 이(夷)자가 나쁜 뜻이라면 자기 이름에 쓸 리가 없을 것이다.

구이는 전국시대에 이어 진나라의 통일이후 중국에 동화되거나 만주와 한반도로 밀려났다. 그런데 구이의 핵심이 동이(東夷)라고 본다. 그 이유는 삼국유사에서 언급하듯, 구이와 동이를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공자가 구이에서 살고 싶다면서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넌다 하셨으니, 산동에서 바다를 건너면 바로 한반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논어의 구이는 바로 동이다.

그 많던 구이가 쇠잔하고 정리되어 결국 우리 민족만이 가장 뚜렷하게 남게 되었다. 구이와 동이의 역사를 계승한 종손이라고 자임하고 그 역사와 전통을 연구할 필요가 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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