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동방의 군자국 건국한 이민족

중국사를 보면, 고대 중국은 동방과 중원을 차지한 동이족, 중서부를 관장한 화하족, 남부를 지배한 묘만족의 삼분천하로 그려져 있다. 장개석의 세계전사(世界戰史)와 섬서성박물관에도 그렇게 되어있다. 담기양(潭其?)이 주편(主編)한 중국사회과학원의 1982년 중국역사지도를 살펴보니, 하은주 삼대와 춘추전국시대까지의 지도에는 꾸준히 중국동방에 구이(九夷) 또는 회이(淮夷), 내이(萊夷)가 표시되어 있다가, 진(秦)나라에 와서는 이(夷)라는 이름이 지도에서 사라지고 대신 진나라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뻗어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진시황제의 군대가 언제 대동강을 넘어 평양까지 왔는가? 희한한 짓이다. 요즘 중국의 어선들이 황해상의 우리 수역에 예사로 침범하고 심지어 우리 경비정을 침몰시키는데도 사과 한번 제대로 하지 않는 중국당국의 태도를 볼 때, 글과 책으로 하는 역사왜곡과 영토침략은 더욱 당당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우리 사학계와 정부에서 묵인하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만천성국가삼림공원(滿天星國家森林公園)에 가면 백의신녀상(白衣神女像)이 우뚝 솟아 있는데 왼손에는 쑥, 오른손에는 마늘을 들고 있다. 이 거대석상은 강원도 양양 낙산사의 해수관음상보다 2m 더 높은데, 그 아래에는 마늘을 먹는 모습을 한 큰 곰도 돌로 만들어놓았다. 우리나라를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웅녀와 단군의 이야기를 중국 소수민족의 한 전설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40여 년 전, 역사서를 읽을 때만해도 동이라면 당연히 한족과 대립하는 동방의 이민족이며 그 종주국은 한국이었다. 다른 계통은 역사에서 사라지거나 다른 민족에 흡수되었고 또는 문명이 변질되어 동이족으로서의 특성을 잃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요즘은 동이를 둘로 나누는데, 중국과 한국 대부분의 학자들은 동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동이(東夷)는 특정 민족이 아니라 중국인들이 중국의 동쪽에 존재한 여러 이민족들을 ‘동쪽 오랑캐’라고 얕잡아 부르는 말이었다. 동이라는 말은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변화하였다. 한나라 이전의 동이는 현재 중국의 산동성, 강소성, 하북성 일대에 살던 이민족을 구분 없이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었다. 이들 이민족은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대부분 한족으로 흡수되었다. 한나라 이후 중국의 영토가 넓어지면서 동이라는 용어는 중국의 동쪽에 위치한 만주, 한반도, 일본 등지에 거주하는 이민족을 부르는 말로 변화되어, 한민족(韓民族) 원류를 형성하는 부여, 고구려, 백제, 예맥, 삼한 등이 동이로 불리었으며, 말갈, 선비, 오환, 왜 등도 동이로 불리었다. 동이 전체를 한민족(韓民族)과 동일시하는 시각은 타당하지 않다.”

그러나 동이를 동쪽 오랑캐로 비하한 것은 춘추이후의 일이고 중국고대의 성현 즉, 복희씨· 신농씨· 요임금· 순임금· 탕임금· 백이· 숙제· 공자는 모두 동이족이었고 동방의 찬란한 군자국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夷)란 뿌리요 생명이요 어질다 하였더누 것이다. 동방의 예의 있는 문화국은 고조선을 필두로 삼국과 고려, 조선이 계승하였다. 그런데 중화사상이 다시 대두하면서 중국은 화려했던 동이의 역사에 경악하여, 이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고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동이와 고대동양문화를 개창한 동이를 구별한다고 본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