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촛불 민심' 긴급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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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모 서울취재본부장
시민은 위대했다. 12일 서울 광화문과 전국 도심에서 총 1백여만 명의 엄청난 인파가 모여서가 아니다. ‘이게 나라냐’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한 것이 위대하다는 것도 아니다. 질서 있게 시위를 한 것이 위대하다는 말이다. 국민은 민주주의를 할 충분한 자질을 갖췄다. 세계 민주주의사의 금자탑이다. 이 땀이 헛되지 않게 이날 민심 표출을 정국의 분수령으로 삼아야 한다.

정국수습의 큰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박 대통령의 개헌 구상, 두 번의 사과, 국회의장실을 방문해 총리 추천 요청 등 일련의 행위는 정국수습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시기를 놓쳤고, 본질도 벗어나서다. 매번 떠밀려서 주기 싫은 것을 억지로 주는 형식이었다. 지금은 내정(內政)을 책임총리에게 맡기는 국정 2선 후퇴와 여당 탈당 및 지도부 사퇴 정도로는 약발이 안 먹힌다. 위기 국면의 수습책은 내용상으로는 의표(意表)를 찌르는 안이어야 하고 시기적으로도 적정 할 때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감동한다. 그래서 이율곡은 정귀지시(政貴知時)라 했다.

박대통령은 더 이상 국정수행이 어려운 만큼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호소해봐야 한다. 최소한 먼저 특검 조사와 국회 특위에서의 국정조사로 최순실사태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겠다고 하고, 내정은 물론 외치(外治)까지 총리에게 맡기고 국가원수로서의 상징만 유지하는 국정의 이선(二線) 퇴진을 선언하는 것이다.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조기 사임하겠다는 일정까지 제시하면 더 좋다. 차기 대통령을 2017년 가을쯤 조기 선출하고 물러나면 된다. 17세기 잉글랜드 왕국의 제임스 2세가 퇴진하는 명예혁명식이다. 미래지향적 ‘2017체제 헌법’을 만들어 제7공화국을 열어야한다. 제물(祭物)을 자청한 심청이 심정으로 해야 한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고 죽으면 산다. 스스로 죽는 길을 택해야 한다. 박대통령에겐 그것이‘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믿고 찍어준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는 길이다.

일각의 주장처럼 지금 바로 사퇴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야당이 추천하는 책임 총리가 거국중립내각을 꾸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고칠 개헌을 하고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위한 중대선거구제를 만들고 국민이 유능한 대통령을 뽑도록 대선을 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민중은 광장에서 외쳐야하지만 정치가는 해결책을 만들어야 한다. 현 단계에서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야당의 지도부가 박대통령을 만나 책임총리권한을 요구하는 것이다. 제2공화국 장면정권처럼 한다든지 일본 영국 수상처럼 한다든지 하는 안을 관철해야 한다. 그 후 야3당 합의로 책임총리를 뽑아 거국 내각을 구성해 위기를 관리하는 것이다.

새누리당도 정리돼야 한다. 박 대통령을 둘러싼 친박세력은 자진해서 물러나야 한다. 의원직도 사퇴해야 한다. ‘친박오적(親朴五賊)’명단이 항간에 떠 돈다. 이 길이 그토록 아껴온 대통령을 살리는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최순실은 물론 정권 실세들과 함께 희희낙락하며 권세를 누린 친박세력은 이 시대의 공적(公敵)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조만간에 나올 박 대통령의 3차 메시지에 걱정이 앞선다. 만약 내정 포기와 현 검찰한테 수사를 받겠다는 수준 따위를 또 수습책이라며 내놓지는 않을까봐서다. 그런식으로 권력에 미련을 갖고 안이하게 대응한다면 야당의 노림수에 걸려들어 탄핵을 당할 수도 있다. 야권이 노리는 것은 탄핵을 위해 국민의 분노를 더욱 증폭시키고 대선 직전까지 몰고 가는 것이라고 한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에게 손가락질하기보다는 빨리 수습하고 대안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 야당의 지도자들이 하야를 외치는 것은 박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장을 위해 도움이 안된다. 선임의 퇴장을 질서 있게 해야 후임의 입장도 질서 있게 된다. 1979년 10.26처럼 무질서하게 퇴장하면 더 악한 정권이 등장하는 역사의 전례를 보지 않았나.





김정모 서울취재본부장
김정모 기자 kjm@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으로 대통령실, 국회, 정당, 경제계, 중앙부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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