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성 화룡현 정효공주묘

말갈의 뿌리라는 숙신(肅愼)은 우리 역사 고대로부터 등장하는 민족이다. 발음이 조선과 비슷하여 더욱 친근감이 간다. 중국의 고서(대대례기)에 숙신의 나라가 있는데, 순임금의 치세를 받들었고 은나라 탕임금에게도 내복하였다 한다. 주나라가 중원천하의 주인이 됨에 숙신이 가장 먼저 축하하였고 화살과 돌촉을 선물했다한다. 중국학계는 동북아시아의 옛 민족을 대체로 숙신, 예맥, 동호, 선비 등으로 나눈다. 그런데 이 모두 고대중국으로부터 갈려나갔다가 결국 다시 녹아들어갔다고 본다. 그리고 단군조선은 인정하지 않고 기자조선으로부터 조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숙신이 먼저인지 조선이 먼저인지 모르겠으나, 조선이란 말이 주선, 주신,수신, 숙신으로 변형되며 읽혀질 수 있다. 고조선을 세운 민족은 구이(九夷) 또는 동이족인데 그 중심은 맥족인 것으로 보인다. 조선은 국명이므로 이 이름을 간직한 부족이 숙신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숙신과 말갈의 조상은 우리민족의 조상은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최근, 원래부터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가 자기들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의 이덕산(李德山)과 난범(欒凡)이 저술한 “중국동북고민족발전사(2003)”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나라시대에 관할한 동북지구의 동부는 지금의 흑룡강 유역에 달했고 남부는 지금의 조선반도 대부분을 아울러 동북강역의 기초를 다졌다... 당조(唐朝)는 고구려 지방민족정권이 소멸된 뒤에 먼저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여 지금의 요녕성 전 경내와 조선반도 대동강 이북지구를 관할했다. 또 지금의 흑룡강 하류지구에 흑수도독부(黑水都督府)를 설치하여 해당 지역의 부족 수령을 도독 및 여러 주(州)의 자사(刺史)로 삼았다. 때문에 말갈족의 수령인 대조영을 좌효위원외대장군 발해군왕(左驍衛員外大將軍 渤海郡王)으로 책봉하고 홀한주도독(忽汗洲都督)으로 삼되, 조정은 장사(長史)를 두어 그 부락을 감독하게 했다. 기가 찬 주장이다. 발해 연구의 효시는 류득공의 “발해고”다. 류득공은 신라와 발해가 모두 우리민족의 역사로서 남북국으로 보아야한다고 했다. 다음 정약용은 발해가 황제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하였고 한치윤은 대조영은 동이족의 현인 대련(大連)의 자손이라 주장했다. 대련은 소련(小連)과 함께 효도를 잘한 인물로 논어와 소학에 등장한다.

발해가 멸망하자 대광현 등을 비롯한 대씨의 후예들이 고려에 귀화하였는데, 그 후손이 협계 태씨(俠溪 太氏)다. 협계 태씨의 족보에는 발해가 신라를 도와 일본의 해상침략을 물리친 기록이 있다. 즉 무왕 개원 19년(731) 2월 일본의 전함 300척이 신라에 쳐들어왔는데, 발해는 신라를 도와 일본군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에도 같은 기록이 있는데, 발해의 도움은 적지 않았다. 지금 경산시 남천면 송백리에는 영순 태씨 집성촌이 있는데, 해마다 춘분(春分)에 전국의 태씨들이 모여 대조영을 비롯한 역대 발해임금에 대한 제사를 황제의 예를 갖추어 올리면서 발해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중국은 당나라가 발해는 물론 오호츠크해와 사할린까지 지배하였다고 과장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흑수말갈이 당과 친하게 지내자 무왕은 이를 징벌하였는데, 어찌 발해가 당의 속국이겠는가? 발해를 잃고 우리민족은 광활한 만주를 잃게 되었다. 만주와 러시아지역답사와 넓고 철저한 고문헌 연구로 발해의 참 역사를 찾는 노력을 경주할 필요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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