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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청묵예원’ 설립자 원학스님 인터뷰
경산 ‘청묵예원’ 설립자 원학스님 인터뷰
  • 이기동 기자
  • 승인 2017년 02월 26일 18시 17분
  • 지면게재일 2017년 02월 27일 월요일
  • 1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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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그림 수행으로 얻은 깨달음 지역민과 나누고파"

“그림과 차를 통해 지역민과 소통하며 맛과 향기, 자연을 함께 나누고 싶다”

그림으로 수행하며 스승들로부터 받아 온 가르침을 재능기부를 통해 일반인에게 전파하는 큰 스님. 묵향에 젖어 아름다운 우리 산하를 그리며 자연과 하나되기를 늘 소망하는 사람.

물욕 덜어 낸 소박한 차 한 잔으로 세상을 맑혀가는 이 시대의 스승. 동양화의 한 분파인 남종화의 맥을 잇고 있는 영남의 대표적 문인화가.

지난해 봉은사를 떠나 고향인 경산시 와촌면 팔공산 자락에 작업실 ‘청묵예원’에 기거하며 일반인을 대상으로 남종화는 물론 서예, 차 등을 무료교육하고 있는 원학스님을 일컷는 용어다.

화려한 이력을 뒤로한 채 지난해 모든 직책을 내려 놓고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민을 위해 재능기부와 남종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원학스님을 만나 청묵예원과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세계,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경산 ‘청묵예원’ 설립자 원학스님

△‘청묵예원’을 소개해 주신다면?

-출가 이후 그동안 공부하고 터득한 불교를 그림과 차에 접목해 일반인에게 전달하는 공부방 겸 포교당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그림과 차 등을 통해 불교를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모두를 진정한 행복의 길로 인도하는 간접포교라고 생각해 1998년 제주도에서 처음 설립했다.

이후 고향인 지금의 ‘청묵예원’에 터전을 잡고 6년 동안 지역 사람들과 강좌를 이어오다 서울 봉은사 주지로 잠시 자리를 비웠다 지난 7월 돌아왔다.

3월4일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서예와 문인화, 차(茶) 교육을 무료로 진행한다.

문인화는 중국 청초(淸初)에 간행된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의 기초를 발췌해 본인이 직접 만든 교본과 서예는 구양순과 왕희지체가 교본이 된다.

또, 초의선사의 동다송 강좌는 내가 해석해 편찬한 ‘향기로운 동다여, 깨달음의 환희라네’를 교본으로 가르친다.

청묵예원의 정신은 먹의 검정과 깨끗한 하얀 한지가 만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듯 사람의 마음에 공존하는 선하고 악한 마음을 아름답고 빛나게 하는 것이며 먹(墨)으로 인간의 심성을 바르게 하고, 차(茶)로 마음을 깨끗하게 밝히는데 있다.



△7번의 개인전을 여는 등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영남지역 남종화(南宗畵)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는데 작품소개와 남종화의 매력은?

-남종화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 보다는 작가의 느낌이나 기억 등을 담은 표현기법으로 기억에 축적된 이미지를 재해석해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관념적 산수화라고 할 수 있으며 선비정신이 잘 살아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추사 김정희가 남종화를 대표하는 인물로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소치 허련(1808~1893)을 비롯해 미산 허형(1862~1938), 남농 허건(1908~1987), 의재 허백련(1891~1977) 등에 의해 전라도에서 많이 발전했던 동양화의 또 다른 분파로 북중화에 대비되는 화파다.

남종화를 시작한 계기는 20대에 서예를 먼저 접했지만 스승으로 모시며 서예의 기본과 정신을 배웠던 청남 오제봉 선생의 의형제인 의재 허백련 선생의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이후 의재 선생의 수제자인 우계 오우선 선생을 스승으로 1980년대 초반부터 남종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은 나에게 있어 수행의 한 방편으로 기술적으로 뛰어나게 그리는 것보다 옛 선비들이 문인화를 그리면서 인격수양을 추구했듯이 나 역시 붓을 들면 자연을 사랑하고 마음을 맑게 닦는

자연합일에 대한 성찰을 더 깊게 하게된다.

청나라때 사대부들의 풍류정신을 본받고자 한 이어(1611~1680)는 자신의 별장 개자원에서 풍류객들을 모아 그림과 시를 논하고 당·송시대부터 내려온 남종화의 기본을 묶어 ‘개자원화본’이라는 책을 였었는데 이번 강좌에 교본으로 채택한 것도 남종화의 전통을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서예와 그림을 접한지 어느덧 40여 년이 흘렀다.

이제는 남종화를 영남지역에 좀 더 널리 알리고 나의 뒤를 이을 제자를 키우고 싶다.

또, 틈틈히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2022년 고희전을 열 계획인데 대구를 비롯해 서울, 제주, 부산 등 나와 깊은 인연을 맺었던 도시를 돌며 순회전을 가질 예정이다.

3년 전(2014년) 우리나라 차에 대해 초의선사가 시로써 다도를 설명한 글인 ‘동다송’을 풀어서 엮은 ‘향기로운 동다여, 깨달음의 환희라네’ 책을 펴냈는데 불교와 그림, 차 는 모두 자연합일의 정신이 스며있는 것 같다.

차는 마음을 맑게 해주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림과 차와 불교가 일맥상통한다.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앞으로 그림강좌는 물론 차 강좌를 통해 지역민과 맛과 향기를 함께 나누고 소통해 불교가 현대인들의 종교적 대안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원학스님은

주변으로부터 항상 정인군자 란 평을 듣는 원학스님은 수행자다운 곧은 기개와 계행, 정연한 논리와 달변, 수준급 예술적 소양 등 신언서판 모두가 반듯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계사년에 경북 경산 경주 김시 집안에서 출생해 16세 때 도성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해인승가대학 12기로 ‘해인승가대학 승가상’을 수상했고 총 동문회장을 역임했다.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 동양화를 전공했고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중앙종회 사무처장, 제10·11·12·15대 중앙종회 의원, 서울 조계사, 봉국사, 진주 연화사, 대구 용연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2009년 총무원 총무부장 당시 스스로 ‘삼이’ 란 호를 지었다. 총무원 소임은 봉사하는 자리, 즉 ‘머슴살이와 같은데 귀 밝은 머슴이 되기위해서는 귀가 세 개쯤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1994년 종단개혁 당시 개혁회의 재정분과위원장으로 조계종 개혁에 앞장섰다 1998년 종단사태 때 깊은 좌절을 맛봤다.

이후 제주도로 내려가 ‘청묵예원’을 설립하고 묵향에 파묻혀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국무총리실 소속 ‘10·27법난 피해자명예회복 심의위원장’으로 종단과 피해자 스님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동분서주했으며 2008년 종교 편향 종식 범불교도대회 봉행위원장으로 종정 표창을 수상했다.

1997년 총무원 문화부장 시절 종교문화 발전을 위한 ‘종교예술제’를 창설 제1회 운영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전통문화와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전문성으로 2012년 불교중앙박물관장을 역임했다.

남종화의 본맥을 잇고 있는 그는 불교미술제 우수상(1974), 국전 동아미술제 입선(1980), 등을 통해 불교계 안팎에서 작품성을 인정 받았으며 1977년 서울 중앙불교회관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총 7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동다송’과는 1994년 선사가 주석했던 해남 대흥사 부주지 소임 당시 만나 각계 다인들과 함께 초의문화제를 창립·발기해 초의 선사 다도정신을 계승했고 그때 마음으로 느낀 다향을 20년 뒤 동다송 으로 엮어 냈다.

차 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13년 제22회 초의문화제 초의상을 받았으며 저서로 ’금강경 야부송 번역 해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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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 기자 leekd@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 청와대, 국회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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