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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웅 콘텐츠연구소 상상 대표
여러 사람이 한목소리로 노래하는 합창(合唱)은 통합과 소통의 탁월한 장(場)이다. 음역(音域)이 다른 수십, 수백 명의 목소리가 조화를 이뤄 근사한 화음을 만들어내는 합창은 지휘자와 참여자들이 세대와 계층을 넘어 진심으로 소통해야 가능하다. 서로 배려하고 각각의 소리를 경청해야만 하모니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기숙사 학교에서 전쟁고아의 상처를 합창으로 치유했다는 줄거리의 프랑스 영화 ‘코러스 (Les Choristes) ’는 많은 지구촌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영화다. 또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합창스토리 ‘오빠 생각’이나 몇 년 전, 청주교도소 여성 재소자들이 합창단을 만들어 감동적인 합창 무대를 선사한 영화 ‘하모니’도 많은 사람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이렇듯 합창처럼 회복, 화합의 능력이 큰 것도 없다. 한목소리로 마음을 모으는 합창은 교도소 담을 넘고, 국경을 넘어 갈등을 화해와 평화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치유력이 있다. 다만 전문 성악인이 아닌 일반인이 한데 모여 장기간 연습하고, 한목소리로 화음을 만들어 낼 때까지 엄청난 인내와 양보가 필요해 좀처럼 시도되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딛고 유치원 어린이부터 80대 어르신까지 1천 명이 한 자리에서 화합의 멜로디를 만들겠다는 당찬 도전이 관심거리다.

6월 9일에 열릴 포항시민의 날에는 18개 팀의 아마추어 합창단이 지역 내 10여 개 전문 합창단과 입을 모아 영일만친구와 아리랑, 시민의 노래를 열창할 계획이다.

65세 이상 어르신들로 구성된 신중년사관 합창단은 사운드 오브 뮤직을 연습 중이고 현역 해병대원 팔각모 하모니 합창단은 마징가제트를 부른다. 송도동 주민들로 구성된 송살이 합창단은 만 5세부터 할아버지까지 3대에 걸쳐 여러 가족이 모여 합창을 통해 세대, 가족 간 화합을 다지고 있다. 강원향우회는 연습하며 합창으로 평창동계올림픽 홍보영상까지 만들며 설렘으로 시민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시민의 날’의 주인공은 시민이다. 그런데 그동안 일방적으로 관에서 기획하고 정작 주인인 시민은 팔짱 끼고 객석을 지켜야 했다. 하지만 올해는 시민이 ‘주연’이 되는 1천 명 대합창을 준비했다고 한다. 모처럼의 기회여서 인지 참여 팀들은 4월 이후 10여 차례 이상의 맹연습에도 더 열성적이고 포항음협 회원과 자원봉사자 등 지휘자들의 지휘봉도 신이 나고 있다.

발트 3국의 ‘노래 혁명’(Singing Revolution)을 잊을 수 없다.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라트비아 리가를 거쳐 리투아니아의 빌뉴스까지 장장 640㎞, 220만 명의 인간 사슬이 손에 손잡고 합창으로 자유를 외쳤고 이 합창으로 세 나라는 마침내 독립했다.

합창은 미워하는 마음으론 화음을 만들 수 없다. 그 구성원들의 음정이나 박자가 다소 틀리더라도 마음을 전하는 노래는 사람들의 가슴과 영혼을 울린다. 합창을 통해 벽도 허물어지고 나눠지고 찢어진 마음도 하나로 뭉친다.

시민들의 이 소중한 경험은 이번 시민의 날뿐 아니라 많은 손님이 찾아오는 포항국제불빛축제나 내년에도 정말 ‘지속가능’ 한 시민 주체의 기획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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