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의 시는 여성의 일생을 노래해

김태준(청도대남병원 산부인과 과장)

 

김소월의 ‘산유화’란 시를 대할때마다 나는 소월이 전생에 산부인과 의사가 아니었을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시의 제 1연에서 ‘산에는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라고 노래했는데, 나는 여기의 산을 뫼산(山) 으로 보지 않는다. 낳을 산(産)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여인의 둔산으로 보기도 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산부인과 의사인 내 직업의식의 발로에 다름 아니다.

또 산부인과에는 젊은 여성들이 춘하추동 늘 찾아오는데 이 여인들이 곧 꽃이요, 태어나는 신생아도 꽃이 아니가.

제 2연에서는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라고 했다. 혼자는 하나요, 하나는 고독이다. 의사는 다만 분만과정을 도와줄 뿐, 아이를 낳는 것(꽃을 피우는 것)은 결국 임부 스스로가 혼신의 힘을 다한 결과이다. 또 하나(化)는 일본 말로 꽃인데 내가 하나병원에 있는 것도 무슨 얄궂은 운명의 소산인지도 모르겠다.

제 3연은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라고 읊었는데, 소월은 자신을 겸양하는 뜻에서 작은 새라고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제 4연에서는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가을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라고 했다.

이 시의 구조는 결국 탄생=고독=사멸로 요약할 수 있는데, 꽃이 진다는 것은 여인의 생식능력의 저하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자연의 법칙에 따라 나고 죽는 것을 되풀이함은 꽃의 운명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저승의 왕자보다 이승의 종살이가 더 낫다면 지는 해를 향해 보다 천천히 가는게 좋을 것이다. 요즘 산부인과 폐경기 클리닉에 지는 꽃들로 가득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 바람직하다.

나는 그래서 ‘산에서 꽃이 피는’ 산부인과 분만실이야 더 할 나위가 없는 만큼 ‘산에서 꽃이피는’ 폐경기 클리닉에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란 표어라도 하나 써 붙였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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