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긴급의사회 소속인 폴러첸은 1999년 북한으로 들어가 인도주의적 의료 및 구호활동을 벌렸다. 그는 북한 노동당으로부터 친선 메달을 받는 등 친북인사로 남한에 알려졌었으나, 몇 년후 북한의 시골 길가에 버려진 고문과 폭행으로 숨진 듯한 한 군인의 시체를 보고 마음의 동요를 일으켜 점차 인권 운동가로 변신했다. 평양만 벗어나면 굶주린 사람들의 처참한 모습이 그에게 다가오고, 정치범 수용소에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나치를 연상했다고 했다. 나치의 만행을 알면서도 눈감았던 당시 독일인의 양심에 대해...
‘문명의 충돌’로 우리에게 충격을 준 새뮤얼 헌팅턴은 정치학자이다. 헌팅턴은 이 책에서 어떻게 하면 기독교문명권을 주축으로 미국이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일본을 중국과 분리시켜 미국 쪽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중국문명권을 견제하고, 이슬람 문명권을 적대세력으로 간주하여 미국의 안보정책을 모색하는 것이 좋은 보기이다. 따라서 제3세계 지식인들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 구도를 문명 논리로 은폐하고 있는 헌팅턴의 속셈을 지적하며 강력하게 비판한다. 헌팅턴이 최근에 {문화가 중요하다}는 책을 펴내서 다시 화...
첫 아기가 태어나고 3주정도 지난 후, 집에서 처음으로 아기의 목욕을 직접 시키던 때였다. 욕조에 일단 담그긴 했는데 너무 떨려서 나는 특단의 조치를 감행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평소 태교음악으로 들었던 클래식 LP음반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기가 그 음악을 분명 기억하는 것이 아닌가. 아기는 눈과 입을 동그랗게 하고 음악이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좋아하는 것이 엄마의 눈에 분명하게 들어왔다. 초보엄마의 아기목욕식은 태교음악 덕분에 무사히 끝날 수 있었다. 음악은 분명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음악관련 ...
평상(平床)에 누워 올려다 보는 밤하늘은 시기에 관계 없이 언제나 아름답고 신비롭게 느껴진다. 북두칠성과 북극성이 보이고, 오리온과 전갈, 비너스와 주피터 등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우리들을 신화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큰 곰, 작은 곰, 전갈, 견우?직녀 등 별들에 붙여진 이름들과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은 천문학이나 점성술이 아니라도 우리와 매우 가까운 자리에 있다. 은하수(銀河水) 위에 놓인 오작교(烏鵲橋)를 건너 견우와 직녀가 해마다 한 번씩 만나는 7월 7석은 음력 절기중의 하나이다. 까마귀와 까치가 만...
북한이 핵을 폐기하도록 유도하는 남한의 중대제안으로 200만kW의 전력을 송전방식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이 계획에 국민적 동의가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결단에 의한 수권적 해결수단인지 하는 등의 왈가왈부가 있다. 이와 관련된 남북한 정치지도자가 국사(國事)를 결정하는 과정이나 방법을 보면서 남북한은 역시 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여기서 남과 북은 동족이고 민족공동운명체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정치체제와 이데올로기 등이 완전히 다르다고 해도 남북...
7월의 중반, 벌써 올 한 해의 반을 넘어섰다. 새삼 세월의 빠름을 실감한다. 하나, 세모의 기간만큼 절절하지는 않다. 돌이켜 생각하니, 새해를 맞으면서 지난 해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보상이나 하듯 새로운 계획과 각오로 다부지게 출발했다가, 해가 저물면서 다시 아쉬워하기를 일상처럼 반복했던 것 같다. 한 해의 중반인 이 계절은 열심히 일한 후 갖는 휴식의 기간이면서도 유난히 몸과 마음이 바쁘다. 이런 절기에 오히려 지난 시간들을 점검하며 앞으로 남아 있는 날들을 가늠해볼 수 있다면, 이 해를 보내는 회한이 조금은 줄지 않을까 ...
최근 주 5일근무 확대와 여름 휴가철을 계기로 농지 투자와 전원생활 터 적지를 찾아나서는 도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도시민들의 농지에 대한 관심은 재테크의 방법 차원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지만 웰빙한 생활을 전원 농촌 공간에서 영위하고자 하는 층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우리는 그동안 농지하면 “경자유전”의 원칙 에 의하여 농업인의 농작물 경작용으로만 이용되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어 도시민하고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끼고 있다. 그리고 농지는 관련 법령과 농지 이용 및 개발 행위의 어려움 때문에 도시민들이 사실상 접...
주말이면 아내와 재래시장을 자주 찾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곳에 가면 왠지 마음이 편하고 마주치는 사람들이 정겹다.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고향에 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장을 한바퀴 돌면서 필요하거나 사고싶은 물건들을 사면 꼭 빠트리지 않고 장터음식으로 요기를 한다. 물건 하나 하나가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고 장터음식의 구수함은 이루 비길 데가 없다. 하지만 재래시장의 불편함이 하나둘은 아니다. 마땅찮은 주차시설, 바닥에 흐르는 물, 많이 좋아졌다지만 아직은 미흡한 화장실, 낱개로 구입...
열린 창으로 빗물이 흩날려 들어온다. 바람은 때때로 ‘휘이익-휘익’ 소리를 내며 겁 없이 창문을 두들겨 댄다. 바깥쪽으로 향한 창문을 닫으려고 베란다로 나갔다가 나는 거기 놓여진 고무신을 신고 오래오래 서 있었다. 고무신을 신으면 나는 그리운 아버지를 만난 듯하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엔 비옷을 입고 삽자루를 어깨에 메고 밀짚모자를 쓴 아버지가 떠오른다. 쏘게양 논, 앞천방 논, 바울태 논, 뒷천방 모랭이 논……. 논 자락마다 이름을 부르시며 행여나 큰물이 들까 봐 물꼬를 트기도 하고 막기도 하며 바삐 다니셨다. 들판을 죽 ...
요즈음 정부가 의대에 대해서는 전문대학원제를 약대에는 6년제를 도입하려고 한다. 물론 교육부가 이에 대한 장-단점을 모두 파악하고 우리나라의 실정에는 의대는 일반대학 졸업 후 4년의 의학전문대학원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반면에 약대는 2년의 수업연한을 더하여 6년 과정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 같다. 무릇 교육을 백년대계라고 한다. 적게는 십년을 많게는 수십 년 앞을 내다보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 바로 교육이다. 이는 수십 년 후의 국가의 경쟁력과 흥망을 좌우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지식은 돈이고 힘이다. 황금을 파내는 노다지와 같고 부(富)를 길러 올리는 샘(泉)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식을 탐구하는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다. 아는 만큼 느끼고 사랑하며 소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식은 진정한 자유의 원천이다. 또한 지식은 수전노처럼 움켜쥐고만 있는 소장품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지식은 요긴한 무기가 되지만 잘못 쓰면 자신을 해치는 칼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지식이 나의 아가미에 걸려있는 낚시 바늘같이 발작적인 욕정 속으로 나를 잡아당기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양심이 결여된 지식을 경계하는 말이다...
제 7대 대구시교육감에 신상철 현 교육감이 재선됐다. 이번 교육감 선거는 시민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내년에 주민직선제로 선거를 치른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가 현행제도로 치른다고 뒤늦게 결정되어 후보자들이 선거를 준비할 시간이 절대 부족했다. 그래서 몇몇 후보자들이 출마의사를 비췄으나 건강상 문제 등으로 출마를 포기하고 전교조 출신 교육위원과 양자대결 구도가 이뤄지는 바람에 일찍 승부를 예견했던 선거였다. 다만, 어느 정도의 득표를 할까가 관심이었다. 선거는 치열한 경쟁을 통하여 후보의 교육철학과 공약을 검증 받아야 ...
인간이 권력과 돈, 명예를 아무리 많이 쌓아도 생명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것이 인간이 피할 수 없는 한계라면,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쨌든 죽음을 대비하기 위해서든 사는 동안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든 생명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다. 생명이 이렇게 귀중한 것이라면 보호되고 유지되어야 하는데 이론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생명이 버려지고 짓밟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먼저 의료시스템을 둘러보자. 얼마든지 살릴 수 있는 생명임에도 ‘돈’ 때문에 ...
지난 번 서울에서 개최되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김천에서 무궁화호를 탔습니다. 객차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얼룩무늬 옷을 입은 군인들이 빽빽히 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간적으로 ‘차를 잘못 탔는가?’ 하면서 확인했지만 나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군인들과 일반인들이 함께 타도록 된 차량이었던 것 같습니다. 깎은 밤톨같이 또렷하게 생긴 아이 옆이 내 자리였고, 앞에도, 뒤에도, 건너편에도 이등병들이니 차안은 온통 이등병들로 모자리를 해둔 것 같았습니다. 때가 때였는지라 슬쩍 물었습니다. 동료의 가슴에 총을 ...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 열 명중 네 명이 주2일 휴일시대를 맞게 되는 확대된 주5일근무제 시행 첫날은 전국에 걸쳐 많은 비를 뿌린 날씨 때문인지 조용하게 지나갔다. 지난해 7월 직원 1천명 이상 대기업과 금융·보험업, 공기업에 이어, 지난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와 공공기관으로 주5일근무제가 확대 실시되면서 실질적인 주2 휴일시대가 열린 것이다.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창출, 근로자 삶의 질 향상, 생산성 향상, 소비 진작 등의 효과를 기대하는 주5일근무제는 국가 경쟁력을 조금이라도 훼손하는 결과 초래가 아닌...
6·25전쟁 55주년을 맞은 지 벌써 십 여일이 지나고 있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전쟁에 휘말려 엄청난 상처를 입거나 목숨을 잃은 전몰장병들에 대해서 마지 못해 하는 행사로 끝난 현중일과 6·25전쟁 55주년은 피해를 본 당사자들에게 그때의 전흔(戰痕)을 되살아나게 한다. 별 관심없이 보낸 6·25남북전쟁 발발의 일자와 요란하게 전개된 6·15 기념 평양축제를 본 우리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더욱이 남한의 문화계를 대표하여 이 축제에 참가한 문화재청 유홍준 청장이 6·25전쟁 당시 인민군들의 전투의욕과 사기를 앙양하기 위해서...
흰 눈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가에 맺힌다면, 비는 음악의 한 곡조 되어 가슴에 스며든다. 빗소리가 굵고 낮은 저음으로 하늘과 땅 사이를 채우는 아침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본다. 쏟아지는 폭우 속엔 지워지지 않는 어떤 노래가 녹아있기에 바라만 보아도 재생되는 세월의 가락이 느껴진다. 한 때의 불꽃같은 추억 속 열정의 순간을 불러내 비를 맞히면, 사랑의 뙤약볕 아래에서 슬픔의 빗물을 받아먹을수록 활활 타오르던 연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물로는 끌 수 없고 불로 꺼야 사위어들던 그리움의 들판에서 비바람이 풀무질을 해댄다. 어디 ...
사람을 죽이는 형벌인 사형제도가 과연 정당한 형벌일까? 이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사람의 목숨, 범죄, 형벌, 법의 기능 등에 대한 가치관이 사람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학계와 실무계에서도 사형제도 존치론과 폐지론이 팽팽하기 맞서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사형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나 사형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폐지되어야 한다. 첫째, 인간이 만든 법이라는 제도가 거꾸로 사람의 목숨을 뺏는 것은 모순이다. 법은 인간이 보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인간들이 만...
‘도시를 떠나 전원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활’을 전원생활이라 국어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적인 의미로 전원생활을 해석하면 “도시인들이 도시를 벗어나 전원에서 농촌빈집을 리모델링하거나 전원주택을 신축하고 텃밭을 가꾸며, 그 곳에서 취미생활을 곁들여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건강하게 즐겁게 살아가는 생활”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그래서 전원생활이라는 의미는 그동안 많이 변화되어 왔고 그 형태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도시인들의 전원생활을 살펴보면, 주말형 전원생활, 전원주거형 전...
최근 연천지역 군부대에서 있었던 동료 살해 사건은 온 국민들에게 경악과 슬픔을 주었다. 국가의 부름에 기꺼이 순응했다가 순직한 젊은 용사들에게 명복을 빌고, 유족들의 슬픈 마음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사회 전체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김 일병 사건’을 겪으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이번 사건이 특수한 상황 속에서 특별한 한 인간에 의해 일어난 돌연변이적 사회현상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 전체의 건강성이 크게 악화되어 나타난 사회의 병리현상인가? 숨겨진 비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발표된 바로는 같은 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