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푸른 물고기'로 4년 만에 안방 복귀
"내면적으로 한 단계 성숙했음을 느낍니다"

방학이 길다고 멀찌감치 미뤄놓은 숙제는 개학이 다가올수록 그 몇배의 무게로 다가온다. 숙제란, 의무란 그런 것이다.

1월28일 전역한 탤런트 박정철(31)이 "병역 의무를 마치고 나니 이렇게 후련할 수가 없다"며 활짝 웃었다.

"입대하기 전에는 뒷골이 괜히 무겁고 머리에 뭔가 매달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다녀오니 의무감으로 보낸 시간이었지만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제 자신을 반성하고 돌이켜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인생 계획을 차분하게 세울 수 있었습니다. 내면적으로 한 단계 성숙한 느낌입니다."

봄비가 제법 많이 내리던 날 만났지만 박정철의 얼굴에서 비 개인 오후의 청량감이 느껴진 것은 그 때문이리라. 숙제를 끝마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편안함이었다.

그는 공익근무요원으로 26개월을 복무했다. 특이하게도 첫 근무지는 경기도 용인시 정평초등학교였다. 거기서 그는 무엇을 했을까.

"아이들에게 우유 급식도 하고 교무실에서 각종 공문서의 복사와 송달 등의 일을 했어요(웃음). 저학년 애들은 저를 전혀 몰랐는데 6학년 정도 되니까 알아보더군요. 처음에 추워서 가죽 재킷을 입고 갔는데 아이들이 하도 잡아다녀서 나중에 다 찢어졌어요. 그 다음부터는 잘 늘어나는 옷만 입고 다녔습니다(웃음)."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서른 넘어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다보니 초등학생보다는 그들의 엄마들이 오히려 그의 팬이었다.

"아이들은 제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데 엄마들이 아이들을 시켜 사인을 받아오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엄마가 시켜서 저한테 오기는 했는데 아이들은 저더러 '그런데 아저씨는 뭐하는 분이세요?'라고 묻더군요(웃음)."

이후 주소지가 바뀌어 그는 서울시 강남구청으로 근무지가 변경됐고 얼마 안 있어 다시 강남구민회관에 파견돼 중년 여성들의 문화강좌 수강 신청을 받는 일을 했다.

"거기서는 또다른 상황이 벌어졌어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이 중신을 서겠다고 나서시는 거예요. 심지어는 본인의 딸을 소개해주겠다는 분도 계셨어요. 저를 좋게 봐주셔서 고마울 따름이죠(웃음)."

입대를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세상을 26개월간 경험하면서 박정철은 자신이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음을 깨달았다.

"솔직히 지나간 제 20대가 너무 억울해요. 물론 바쁘게 일했고 연기자 박정철로서는 많은 복을 누렸지만 자연인 박정철은 그 속에서 얻은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일만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매번 코앞의 일만 생각하게 됐고 그런 시간의 반복이 연기자로서도 성장을 방해한 것 같아요."

입대하면서 초반에 10㎏가 쪘던 그는 전역 1년을 앞두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제대하면 연기자 박정철의 2막이 열리는 것인데 당시 저 자신을 돌아보니 안되겠더군요. 그때부터 운동에 매진했고 책도 파고 들었습니다. 8㎏을 뺐고, 인간의 심리묘사를 한 책들을 많이 읽었어요. 생각도 많이 하게 됐구요."

그렇게 전역을 준비하던 중 말년 휴가 때 캐스팅 제안이 들어왔고 그는 4월 첫 방송하는 SBS TV '푸른 물고기'(극본 구선경, 연출 김수룡)로 안방에 복귀하게 됐다. 2003년 8월 막을 내린 SBS TV '스크린' 이후 어언 3년반이 흘렀다.

'사랑에 미치다' 후속으로 방송될 '푸른 물고기'는 아픈 기억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은 남자가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는 미스터리 멜로 드라마. 감정의 소모가 많을 것이라 예상된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장르입니다. 굉장히 극적이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합니다. 편한 상황은 하나도 없어요. 지금 제게 편하게 할 수 있는 역은 전혀 도움이 안될 것 같아요. 제 능력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역이라야 끝나고 제가 얻는 것도 있죠. 아직 배워야할 게 많거든요. 이번 드라마는 제게 도전의식을 자극했습니다."

각오도 새롭게 다졌다. 예전의 박정철과는 다른 모습을 기대해달라고 당부한다.

"예전에는 솔직히 운을 많이 바랐습니다. 저도 캐릭터, 작품 운이 있었으면 했죠. 하지만 그게 얼마나 근시안적인 생각이었는지 이제 깨달았습니다. 거저 되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하는 만큼 결과는 나올 것이라 믿습니다. 이제는 뭐든지 다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딴 생각 안 하고 연기에 집중할 겁니다."

1997년 KBS 슈퍼탤런트 공채로 데뷔한 박정철은 드라마 '순수의 시대' '신화' '스크린' 등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인기를 모았다. 데뷔 10년. 그도 팬들도 변화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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