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놓였던 3명의 여자가 미국인들의 죽음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놓고 있다.

처음에는 캐런 앤 퀸런, 다음에는 낸시 크루전, 그리고 이번에는 테리 시아보이다. 세 여성의 공통점은 원인은 다르지만 젊은 나이에 혼수상태에 빠진 뒤 죽을 권리에 대한 소송이 벌어졌다는 점.

또 이들의 비극은 모두 미국민의 관심과 동정을 받았을 뿐 아니라 새로운 법 제정으로 이어졌고 새 의료관행을 낳았으며 나아가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변화시켰다.

현재 미국의 모든 주들이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을 만큼 병이 심각한 환자가 스스로 자신에 대한 치료수준을 정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들의 비극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75년 당시 21세였던 퀸런은 파티에서 술과 신경안정제 발륨을 섞어 마신 뒤 혼수상태에 빠졌고 그녀의 부모는 인공호흡장치 제거를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소송에서 이겨 1976년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했으나 퀸런은 1985년까지 혼수상태에 있다가 숨졌고 죽을 권리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다.

1983년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크루전의 소송은 대법원까지 이어졌다.

딸의 생명유지장치 제거를 요구하며 소송을 낸 그녀의 부모는 1990년 대법원에서 딸이 '식물인간' 상태로는 살기를 원치 않았음을 입증해야 했고, 크루전은 그 해 12월 생명유지장치 제거 후 숨졌다.

퀸런은 당시 미국에서 싹트고 있던, 환자 스스로 임종치료를 결정하게 하자는 운동에 힘을 불어넣었고, 이는 미국의 모든 주들이 사망선택유언이나 사전의료지시 등의 형태로 환자들이 죽음을 택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

대법원까지 올라간 크루전 사건은 본인이 살아있을 때 의사를 표시했다는 증거가 있으면 그가 죽을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확산시켰고 결국 죽을 권리라는 헌법적 권리가 탄생하게 됐다.

현재 미국 사회에서 뜨거운 논쟁을 낳고 있는 시아보 사건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시간이 흘러야 알 수 있겠지만 이 사건이 엄청난 잠재력을 가졌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 여자의 삶과 죽음으로 촉발된 논쟁들은 모두 베이비붐 세대와 삶을 연장해주는 의학발전이라는 배경에서 펼쳐지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 이런 상황을 맞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워싱턴 고통완화 의료연구센터의 조앤 린 박사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그런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며 "시아보 사건은 이전 두 사건처럼 이 사회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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