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교대역 뒤엔 틈새 하나 있다
하루의 환승역 같은 오후 네 시와 다섯 시
그 출출함과 허허로움을 채워주고 달래주던 틈새
세상을 한 번 움켜잡아 보려고 악쓰며 버티다
놓아버린 손처럼 퍼져버린 라면이랑 위 아래 눌려
숨 한 번 제대로 못 쉬어 본 샌드위치, 신문지 눌러쓰고
반가운 얼굴로 틈새시간 열어 주던 아줌마
거대한 것들 속에서 틈은 생긴다
높은 빌딩과 평수 넓은 사무실 사이에
슬레이트 두 장과 의자 서너 개만으로도
빈틈을 메우고도 남던 식당도 분식점도 아닌
그냥 틈새만으로 불렀던 곳
고향 가는 기차에 몸을 실어본 사람이라면
간이역에서 우동 한 그릇을 비워본 사람이라면
십 분의 뜨거운 맛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안다. 공간이 틈을 살리는 것 같지만
틈이 공간을 먹여 살리고 있음을





<감상> 불어터진 라면처럼, 숨죽이는 샌드위치처럼 살아본 사람은 안다. 틈이 공간을 먹여 살리고 있음을, 주변이 중심을 먹여 살리고 있음을. 시인은 큰 꿈을 안고 상경하였으나 녹록지 않은 삶에 좌절하고 만다. 낙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간이역에서 우동 한 그릇, 아니 눈물 한 그릇을 비워본 사람은 느낄 줄 안다. 십 분이라는 틈새 시간 동안 인생의 뜨거운 맛을, 틈새가 전(全) 지구를 떠받치고 있음을. 고향으로 낙향한 시인은 틈새로 집을, 식솔들을 떠받치고 있으니 가상하다. <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