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감상> 바람처럼 자신의 종적을 알 수 없는 삶, 하지만 시인은 바람 때문에 자신의 괴로움을 탐색해 보게 된다. 도식적으로 시를 읽지 말자. 정말 시인은 괴로움에 이유가 없을까 반문해 본다. 자신의 처지 때문에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한 여자를 마음속으로 사랑하였으나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건 아닐까. 시대를 고민하고 슬퍼하였지만 행동으로 담대하게 실천하지 못한 반어적 상황이 시인 앞에 놓여 있다. 바람을 부니 내 발이 반석 위에만 있지 않을 것이고, 강물이 흐르니 내 발이 언덕 위에만 가만히 서있지 않을 것이다. 폴 발레리처럼 바람의 탄생을 기다리고,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는 명상이 담겨 있는 시로 해석되는 건 나 혼자 뿐일까.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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