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특별상

유병수作

이웃집 할머니가 다녀가셨다. 여간해서는 남에게 싫은 소릴 하시지 않는 분인데 단단히 벼르고 오신 모양이었다. 갑작스런 일이라 우리도 적잖이 놀랐다. 시골살이를 하러 오기 전부터 이웃과 잘 지내고 싶어 마음 준비를 많이 했었다. 이사 와서는 집집이 떡도 나누고 음식을 만들어 경로당에도 가져다 드렸다. 어르신을 뵈면 살갑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도 인사성 바르다고 좋아들 하셨다. 그런데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때문에 이웃의 핀잔을 받게 되었다.

청송으로 귀농을 결정하고 암수 강아지 한 쌍을 분양받았다. 오래 사귀던 친구와 이별할 아이들을 위한 배려였다. 청이와 송이로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중 송이는 잘 생긴 수컷이다. 송이가 어느새 자라 어엿한 총각이 되었다. 애교라곤 모르는 송이가 깜찍하고 귀여운 청이에게 날마다 구애를 하기 시작했다. 스스럼없이 다가가 청이의 냄새를 맡고 입을 맞추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주인의 사랑을 한 몸에 독차지하는 청이의 콧대는 주왕산 꼭대기보다 높아서 송이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냉소적인 성격의 송이는 단념도 빨랐다.

청송이는 밖을 배회하다가도 손나팔을 하고 이름을 부르면 득달같이 달려온다. 스무 가구 남짓 사는 조그마한 동네여서 귀 밝은 강아지들은 금방 알아듣는 가 보았다. 하지만 이슬비가 종일 추적이며 내리던 그날은 사정이 달랐다. 항상 붙어 다니던 청송인데 송이만 온종일 보이지 않았다. 동네를 다 뒤져도 허사였다. 해거름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왔을 땐 몰골이 가관이었다. 몸 전체가 까만 털로 덮이고 가슴엔 기하학적인 흰 무늬가 있는 원래의 멋스런 녀석이 아니었다. 푸른빛 목줄을 포함한 몸 전부가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젖은 흙에 범벅이 된 몸은 퀭한 눈과 함께 영락없는 패잔병 꼴을 하고 있었다. 발정기에 들어간 녀석이 끓어오르는 욕정을 어쩌지 못해 종일 뒷산에 가서 혼자 뒹굴다 온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날 이후 송이는 자주 집을 나갔다가 배가 고플 때쯤 슬며시 나타나곤 했다. 청이에게 실연당한 녀석은 다른데서 짝을 찾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아직 풋내는 나지만 덩치는 저보다 큰 풍산개에게 연정을 쏟기로 했다는 걸 길 건너 끝집에 있는 할머니의 방문을 받고서야 우리는 알았다.

“집에 강새이가 날 새마 우리 집에 와 싸서 죽겠구마. 우리 강새이 한테 어찌나 치대쌌는지 하얀 강새이가 꺼먼 강새이가 됐구마는. 우리 강새이는 종자도 좋은긴데 새끼 뱄는 거 아인가 모리겠다.”

족보 없는 송이는 할머니에겐 견제의 대상인가 보았다. 그렇더라도 저리 요령 없이 말씀하시다니 세상에 아름다운 말도 많고 많은데 곁에 있는 송이도 불쌍하고 나는 더욱 민망했다. 그저 강아지가 자주 와서 신경이 쓰이니 좀 묶어두라고만 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지난 번 할머니 집 아궁이에서 번진 불이 집 전부를 태울 뻔 했을 때 가장 먼저 발견하고 불길을 잡은 사람은 우리 식구였다. 강아지를 평생을 같이 할 가족으로 생각하기보다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여기는 할머니의 입장을 고려하더라도 그리 말씀 하신 건 어째 좀 야속하다.

사랑을 갈구하던 송이가 묶였다. 녀석이 처음 당해보는 구속이다. 길 건너 풍산이가 있는 곳을 향해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북받치는지 자신의 집 지붕을 계속해서 물어뜯는다. 가정을 이룰 수 없는 집은 더 이상 아늑하지 않다는 뜻인가. 어쩌다 녀석을 묶어놓은 줄이 통째로 풀려 사라지고 없을 때가 있다. 불러도 돌아오지 않을 녀석임을 알지만 어디를 갔는지 찾느라 고민할 필요도 없다. 녀석은 어김없이 풍산이 곁으로 달려가 변함없는 열정을 불사르는 중이었고 이웃 할머니의 심기는 여전히 불편했다.

송이 녀석을 떼어내 집으로 데리고 오면서 생각했다. 오래전 홀로 되신 할머니는 동물이 사랑하는 저 모습도 가히 아름답게 보이진 않는가 보다 하고.

 

 

 

관련기사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