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해읍 이재민대피소 가보니…잘 될꺼라는 희망 버린지 오래
하루 하루 약의 힘으로 버텨내

19일 포항시 흥해읍 이재민대피소에서 만난 이춘석(73) 할머니가 수시로 복용하는 약봉지를 꺼내고 있다.

“자다가도 지진이 나는 악몽을 꾸면서 수차례 깨는 마당에…크리스마스 같은 소리하지 마소”

지난 2017년 11월 15일. 갑작스레 찾아온 지진은 포항을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규모 5.4 강진과 백여 차례가 넘는 규모 2.0 이상의 여진에 뒤흔들려 상처 입은 포항시민들의 아픔은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크리스마스를 약 일주일 앞둔 19일 찾은 포항시 흥해읍 이재민대피소.

지진이 발생한 지 어느덧 햇수로 3년이 됐지만, 이재민들은 아직 지진 트라우마로 인해 불안을 느끼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23개월째 대피소에서 이재민 생활 중인 이춘석(73) 할머니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잘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버텼는데, 이제는 수면제와 감기약만 달고 사는 신세”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밤 10시에 대피소 내 모든 불이 꺼지고 혼자 1평 남짓한 텐트에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려는 내 모습이 너무 서글프다”라며 “40년 가량 앓고 있는 우울증이 지진 이후 부쩍 악화했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지진을 겪은 후부터 언제든지 대피할 수 있도록 가방에 통장·인감·가족사진 등을 챙겨둔 가방을 텐트 한편에 놓아두고 산다.

지진 트라우마는 진앙지인 흥해읍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포스텍 융합문명연구원이 지난해 11월 포항시민 500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포항지진의 트라우마’ 연구결과에 따르면 정신적 피해를 경험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80%에 달했다.

특히, 응답자의 41.8%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또한 약 86%의 응답자가 또 다른 지진에 대한 공포를 겪은 점에 미뤄 포항지진은 대부분의 포항시민에게 심리적 충격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포항시 북구 대흥동 중앙상가에서 만난 최고은(25·여)씨는 “어디를 가도 큰 소리가 들리면 깜짝 놀라면서 지진을 의심하게 된다”며 “심지어 비 내리는 날 들리는 천둥·번개 소리마저 지진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렇듯 포항시민들을 괴롭히는 지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본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이영렬 포항지진 트라우마 센터장은 “최근 상담을 받으러 온 주민들의 3분의 1은 이미 우울증약, 수면제 등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상태”라며 “증상이 심해질수록 작은 언쟁에도 큰 다툼으로 번지는 등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규칙적인 운동은 물론, 꾸준한 사회활동을 비롯해 가장 어려운 ‘이미 벌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아가겠다는 긍정적인 생각’. 이 3가지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극복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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