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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경제 시대·도시 조성] 4. 옛 고도 문화 경쟁력- 톨레도·코르도바, 그라나다
[문화경제 시대·도시 조성] 4. 옛 고도 문화 경쟁력- 톨레도·코르도바, 그라나다
  • 곽성일 기자
  • 승인 2020년 02월 03일 22시 01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2월 04일 화요일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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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고도' 관광 명소화 문화도시 진출 교두보
이베리아 반도 중앙 카스티야라만차 평원의 언덕에 위치하는 역사적인 요새 도시 톨레도 전경. 곽성일 기자
이베리아 반도 중앙 카스티야라만차 평원의 언덕에 위치하는 역사적인 요새 도시 톨레도 전경. 곽성일 기자

인류는 정착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문명이 시작됐다.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필연적으로 도시가 형성됐다.

도시는 대부분 강과 바다 주변 등 인간이 의식주를 해결하기 편리한 곳에 자리 잡았다. 또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요새와 같은 방어를 하기 수월한 곳에 위치했다. 이들 도시 중 지역이나 국가의 중심이 되는 도시의 품격은 다른 도시와는 특별하다. 역사의 중심 역할을 해온 고도(古都)를 찾는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고도 문화가 지역경제 활성화의 상품으로 등장하고 있다.

스페인 톨레도와 코르도바, 그라나다 등 고도가 세계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가 되면서 지역경제의 활력소가 되듯이 경북도도 신라 천 년 수도 경주와 정신수도 안동, 근대화 발상지 포항 등을 특색있는 문화도시로 조성해 문화가 도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게 해야 한다.

이베리아 반도 중앙 카스티야라만차 평원의 언덕에 위치하는 역사적인 요새 도시 톨레도 전경. 곽성일 기자
이베리아 반도 중앙 카스티야라만차 평원의 언덕에 위치하는 역사적인 요새 도시 톨레도 전경. 곽성일 기자

△톨레도, 스페인의 역사를 품은 옛 수도

타호강은 말없이 흐르고, 겨울 햇살이 고도 톨레도에 쏟아진다. 아득한 과거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에스파냐 톨레도를 휘감는 타호 강물은 말없이 흐른다. 에스파냐를 스쳐 갔던 숱한 왕국의 수도였던 톨레도는 고도의 품격을 보여준다. 타호 강 협곡 위 구릉의 톨레도 시가는 오래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강렬한 햇빛이 도시를 지켜준다. 천혜의 요새 톨레도는 에스파냐의 가장 많은 역사를 품고 있다.

톨레도는 1560년 통일 스페인 왕국이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겨 가기 전까지 기원전부터 왕국들의 수도였다. 전망대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톨레도는 세계문화유산답게 품격이 우러났다. 숱한 세월 속에서도 정복의 역사가 손꼽힐 정도로 요새에 자리 잡고 긴 역사를 증언해 주고 있다.

오래된 성당과 유대인 거주지구 등 시가지는 마치 중세의 어느 날 톨레도를 걷고 있는 듯했다. 한 곳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그만큼 고도의 품격은 남달랐다. 지금껏 톨레도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친절한 자부심이 묻어나왔다.

산토 도메 성당을 찾는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경건한 순례객들의 톨레도는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다. 특히 산토 도메 성당에서는 엘 그레코의 역작인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El Entierro del Conde de Orgaz, 1586년작)’ 원본을 감상할 수 있다.

언젠가 살았을 것 같은 낯설지 않다는 생각과 한 번쯤 세상의 근심을 내려놓고 맘껏 시가지를 걸으며 톨레도의 품격을 닮으며 취하고 싶어진다. 과거로부터 영원까지 이어질 톨레도에 쏟아지는 겨울 햇살은 영원하리라.

코르도바 모스크 사원. 곽성일 기자
코르도바 모스크 사원. 곽성일 기자

△코르도바, 이슬람 색채 짙은 고대 도시

중세의 거리로 걸어갔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미로와 좁은 골목길 중세 속으로 빨려들었다. 에스파냐 코르도바, 그 마법 속으로 향했다. 왠지 낯설지 않은 곳으로 안내했다. 마치 오래전에 걸었던 익숙한 길을 걷는 듯했다. 멈춰선 물레방아는 고양이의 놀이터였다. 그들이 주인이었다. 인간의 손길이 멈춘 그곳에서. 로마 시대 다리와 개선문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

785년경 창건된 ‘코르도바의 대모스크’는 이후 몇 번에 걸쳐서 확장됐지만, 스페인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이다. 고색창연한 회색빛 모스크를 성당으로 개조한 건물과 하얀색 골목길은 색의 아름다움과 중세와 현대가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슬람 사원을 가톨릭 성당으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다른 성당과 갈이 어색한 만남이 아니었다. 붉은 무늬와 희거나 회색빛 문양은 엄숙함이 아닌 예술적인 황홀경으로 빠져들게 했다. 이슬람과 가톨릭의 혼재가 조화로움을 연출한 드문 곳이다. 경쟁자도 오랜 세월을 함께하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가 전해져왔다.

한낮의 겨울 햇살은 성당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라베스크 창으로 투과된 햇살은 전쟁이 아닌 평화를 가득 채웠다. 인간의 종교와 이념 갈등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언제나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은 언제나 순리의 근본임을, 인간의 생각이 허무함을, 코르도바의 겨울 햇빛이 갈등을 넘어 화해와 용서, 나아가 평화를 말해주고 있었다. 코르도바를 찾는 이는 모두 가슴 가득 이 햇살을 간직하고 있으리라. 그리고 그들이 바로 코르도바의 햇살이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라나다 알함브라궁전. 곽성일 기자
그라나다 알함브라궁전. 곽성일 기자

△그라나다, 이슬람 문화의 정수 알함브라 궁전을 품다

삶의 전부를 버리고 떠나는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가 있을까. 그 결정이 거부할 수 없고 나 혼자만이 아닌 집단의 운명이 걸려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복잡했을 것이다.

수백 년간 이베리아 반도에서 정착했던 이슬람 나스라 왕조가 가톨릭 세력에 밀려 떠나게 됐다. 특히 이슬람 문화의 정수인 에스파냐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을 두고 떠나야 하는 나스라 왕자의 심정은 참담했으리라.

이사벨 야광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만년설이 있는 험준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우회해 궁전이 보이는 싼타페에 진을 쳤다. 거룩한 믿음이라는 싼타페에서 7개월간 대치를 했다. 궁전에서 방어하는 나스라 왕조는 고작 7000명에 불과해 성안에서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가톨릭 진영은 대치가 장기화하자 무력으로 진압하자는 여론이 팽배했다. 그러나 이사벨 여왕은 어느 날 밤 알함브라 궁전에 비치는 아름다운 빛을 보고 감탄을 한 후 파괴하지 않고 정복하기로 했다. 그래서 협상을 위한 사자를 궁 안으로 들여보냈다.

더는 버틸 여력이 없던 나스라 왕자는 3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철수하겠다고 했다. 그 조건은 첫째 알함브라 궁전을 보전해 줄 것 둘째 왕조 국민을 모두 데려갈 수 없으므로 백성으로 받아줄 것 셋째 그들의 종교적 자유를 보장해 줄 것 등을 제안했다.

이사벨 여왕은 이슬람 추방을 위해 벌인 전쟁이므로 세 번째 종교적 자유 보장이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으나 궁전을 너무 갖고 싶어 거짓으로 약속했다. 

그 이후 이베리아 반도 마지막 이슬람왕조는 떠나갔다. 왕자는 철수하면서 궁전이 보이는 언덕에서 대성통곡을 하며 차마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궁전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했기에 떠나면서까지 적군에게 아름다움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을까. 쓸쓸하고 참담했었을 이슬람 왕자를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들의 후손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붉은 궁전 알함브라 궁전은 아름다운 이슬람 문양과 각종 식물로 꾸며져 지상낙원을 연상케 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지상에 펼쳐 놓은 그들에게 경외감을 느꼈다.

반면에 아사 벨 여왕은 아름다운 궁전에 입성해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다. 그 상황을 이용해 콜럼버스는 여왕의 허락을 얻어내 신대륙 항로 개척에 나섰다. 그 결과 알함브라와 신대륙을 가질 수 있었다. 알함브라 궁전은 찾는 관광객이 많아 인원수를 제한할 정도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문화도시는 물론 지역과 국가 경제 활성화의 중심이 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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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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