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사(士), 즉 귀족을 뜻하고 소인은 서인(庶人), 즉 평민을 뜻한다. 전쟁에 참가하면 귀족은 사(士), 평민은 졸(卒)이라 불렀다. 사는 참전도 하고 전투도 벌였으므로 ‘전사(戰士)’라 불렀지만 졸은 참전은 하되 전투는 하지 않고 뒤따라 다니기만 했으므로 ‘주졸(走卒)’이라 불렀다. 문자학자는 사가 ‘왕(王)’, ‘황(皇)’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반듯하게 앉아 있는 모양이며 단지 왕이나 황은 머리 부분이 더 클 뿐이라고 했다.”

장기판의 ‘사(士)’와 ‘졸(卒)’의 역할 차이를 제대로 몰랐는데 중국 역사 고전 해설가 이중텐(易中天)의 ‘중국사’에 그 뜻을 잘 풀어놓았다. 선비 사로 불리는 ‘사(士)’는 원래 왕족으로 나라가 위급할 때 참전해 전투하는 막중한 책임과 의무가 따랐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선비’라면 수염을 기르고 높은 정자관(程子冠)이나 갓을 쓴 사람을 연상하게 된다. 선비는 귀족으로 성년이 되면 관을 썼다. 이중텐의 풀이대로 하면 선비는 면류관 없는 왕인 셈이다. 그만큼 자부심이 강한 계층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사사건건 각을 세우며 탄핵의 단초를 제공, 배신자 낙인이 찍힌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이 지난 9일 4·15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선비 정신을 언급했다. 유 의원은 “사림(士林)의 피를 이어받아,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과 나라에 충성하는 기개와 품격을 지닌 대구의 아들로 기억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했다. 유 의원의 소신이 영남 사림의 선비정신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사림은 유교적 정치신념을 굽혀 조선 건국에 가담하지 않고 초야로 돌아간 고려 후기 유학자들의 후예들이다. 경북 선산으로 가서 많은 제자를 배출한 야은(冶隱) 길재(吉再)가 영남 사림의 대표적 인물이다. 타협할 줄 모르는 정치인 이라는 유 의원이 ‘개혁보수의 길’을 강조하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사(士)’는 원래 전쟁에 나서면 ‘전사(戰士)’가 된다고 했다. 유승민이 보수와 진보의 일전(4·13총선)을 앞두고 불출마 선언으로 모처럼 보수대통합 물꼬를 열었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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