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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립중앙박물관 ‘가야본성, 칼과 현’을 관람하고
[기고] 국립중앙박물관 ‘가야본성, 칼과 현’을 관람하고
  • 이영식 인제대학교 인문문화융합학부 교수
  • 승인 2020년 02월 17일 16시 43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2월 18일 화요일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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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 인제대학교 인문문화융합학부 교수
이영식 인제대학교 인문문화융합학부 교수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가야본성, 칼과 현’을 관람했다. 1991년에 개최된 특별전 ‘신비의 고대왕국, 가야’에 뿌듯해했던 기억이 새롭다. 28년이 지난 후의 가야 특별전은 그동안 가야사 복원을 짚어보고 연구의 진전을 바라는 축제로 기대했다. 이전의 특별전이 한국사에서 가야사가 독립되는 가야사 복권을 선언했다면, 지금의 특별전은 이후의 가야사 복원의 연구 결과가 펼쳐지는 자리였다. ‘신비나 수수께끼의 가야사’가 아니라, ‘본성’이란 이름으로 가야사의 진면목을 소개하기 위한 전시라고 생각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진행된 가야사 복원의 동력은 가야 고고학 자료의 축적과 ‘일본서기’의 비판적 활용이었다.

가야 고고학 자료의 축적으로 ‘가야 각국’의 개성을 보여 주는 토기들, 해상 왕국의 면모와 가야 문화의 국제성을 나타내는 중국 계통의 화폐와 거울, 진나라 허리띠 장식, 일본 계통의 청동창·토기·바람개비모양 방패장식, 북방유목계통의 청동솥과 말갖춤, 서역 계통의 로만글라스까지 등장하였다.

가라국(대가야)이 중국 남제까지 항행했던 경유지로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 출토 대가야 계통 유물이 보여 지고, 판상철부 · 철정과 함께 가야의 철제 갑주의 도열은 압권이었다.

학계와 언론은 이번 전시에 대해 만만치 않게 지적했던 모양이다. 일부 언론과 민간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의 부활’로 오해될 수 있다 하였다. ‘임나일본부설의 전시장’ 운운은 그동안 가야사 연구의 진전에 대한 오해가 있다. 대가야 대외 교역로 지도에 전라 동부 지역 기문(장수·남원), 대사(하동) 등의 표기는 ‘일본서기’ 기술대로가 아니다. 백제가 이 지역에 진출한 사실과 왜에게 이 사실을 인정시키려 했던 것으로 복원한 우리 학계의 비판적 연구가 전제되었다.

장수, 남원, 순천의 가야 고분군을 함께 표기한 것은 대가야 계통 유물과 백제계 유물이 등장하는 변화상을 근거로 했다.

연표에 369년 가야 7국이 백제와 왜의 연합군에게 공격받았다고 한 것은 문제다. 오히려 366년에 백제가 창원의 가야 탁순국에게 왜와의 통교를 중개해 달라 했던 사실만 표기했으면 좋았다. 가야 7국 평정 설화가 ‘일본서기’의 소중화주의적 창작이었던 것은 일본 학계에 의해 이미 주장되었다. 일본 교과서 등에는 ‘일본서기’ 신공기 249년의 기사를 120년 이후 369년의 사실처럼 기술됐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 역사 주체를 ‘일본’에서 ‘백제’로 바꾸면 역사가 복원된다는 우리 학계 백제사 중심의 주장을 수용했거나 오해했던 것에서 비롯된 잘못이다.

이렇게 지금까지 가야사는 일본은 물론 백제에 의해 좌우되었던 역사로 쓰이기가 일쑤다. 신라 중심의 일찍 멸망한 역사로 평가되기도 한다. 특별전 주제에 ‘현’도 있으니, 가야금 12곡의 새로운 해석에서 추출된 대가야의 가야 통합 노력이나, 김해 봉황토성 등의 여러 가야 왕성 발견이 조명되지 못해 아쉬웠다. 가야 문화의 진실과 위상이 새롭게 소개된 이번 특별전은 ‘가야사 자율적 발전론’의 복원에 더욱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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