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세계는 지금 ‘코로나19’와 전쟁 중입니다. 보시다시피 악전고투입니다. 며칠 전부터는 대구·경북 지역이 최대 격전장이 되고 있습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앞으로 얼마나 확진자가 더 나올지, 과연 2~3 주 내로 각급 학교의 개강(개학, 개원)이 가능이나 할 것인지, 지역경제가 입는 타격은 또 얼마나 클 것인지, 쉽게 예측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대구에 사는 저로서는 제 한 몸의 안위를 걱정하기에도 바쁜 실정입니다. 외출을 자제하고 가급적 대중교통 이용을 줄이고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병원 사정이 전반적으로 어려우니 이런 때일수록 병치레라도 하면 큰일이다 싶어 여러모로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조심해도 수그러들지 않는 게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포비아(phobia·공포증)입니다. 코로나 포비아(감염 공포) 그 자체도 심각하지만, 은연중 그 스트레스의 여파가 여기저기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공연히 기분이 가라앉고(우울하고), 외부의 작은 자극에도 과민한 반응을 내보일 때가 많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냥 툭툭 털고 넘어갈 경미한 불쾌감이 지속적으로 짜증과 분노를 유발합니다. 때로는 자기파괴 충동(‘그냥 확 때려치워 버릴까?’와 같은 심정)까지 불러일으킵니다. 평소 낙천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꽤나 애쓰는 편이었는데(그동안 이 지면에서 보신 저의 글들이 그런 성향을 반영하고 있지 싶습니다) 코로나 포비아 앞에서는 거의 속수무책인 것 같습니다.

원래 포비아(phobia)는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국한되어 발생하는 공포(증상)를 뜻합니다. 일종의 불안 장애입니다. 공포자극에 노출되면 예외 없이 즉각적인 불안 반응이 유발되며, 심하면 공황발작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환자 본인은 이러한 공포가 너무 지나치거나 비합리적인 것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과 ‘겪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기 때문에 일단 포비아 상태가 되면 일상생활이나 사회적 역할에 심각한 지장을 받게 됩니다. 치료법도 막연합니다. 현재로서는 지속적으로 노출 요법과 같은 자기 극복 행동을 통하여 스스로 정서적인 안정을 확보해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나이가 들면서 포비아의 영향력이 현저히 감소되는 것을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 그동안 살아오면서 인체(심리 포함)의 허약함에 대해서 절실히 공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과도 깊은 연관이 있지 싶습니다. 포기의 힘이지요. 모든 불안은 ‘너무 강하게 붙들고 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조금 느슨하게 붙들고(일부 놓고) 사는 것도 편하게 사는 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젊어서 숱한 포비아에 시달렸습니다. 고소공포, 광장(무대)공포, 밀실(폐쇄)공포, 대인기피증, 대중교통공포(철도만 가능) 등등 웬만한 포비아는 다 겪었습니다. 유전인가 싶기도 했고, 자신감 부족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것들이 찾아올까봐 지레 두려울 때도 많았습니다. 망상이 찾아오는, 혼자 있는 밤이 두려워 밤을 새울 때도 많았고요. 그래서 주로 밤에 글을 많이 썼습니다. 젊어서 집사람이 남들에게 “우리 신랑은 잠을 안 자요.”라고 말하기에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진담이었습니다. 제가 자고 있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진짜 잠 안 자는 사람이라 여겼다는 겁니다. 그런 아내가 얼마 전에 “당신, 자면서 코고는 것 알아요?”라고 충격적인 말을 했습니다. 코고는 친구들 때문에 단체 연수나 여행은 아예 사절이라고 떠들고 다닌 저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것도 아내에게서 고발당했으니까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과히 나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내 자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코로나19’와의 전쟁도 언젠가는 종식될 것입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포비아에 사로잡히지 말고 포비아를 굽어보면서 어른스럽게 이 한 철을 나야 되겠습니다. 마스크 꼭 착용하고, 손 자주 씻고, 사람 모이는 곳은 적극 피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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