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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구 근대미술사] 6. 포항미술사 첫 인물, 서화가 곽석규
[경북·대구 근대미술사] 6. 포항미술사 첫 인물, 서화가 곽석규
  • 박경숙 큐레이터·화가
  • 승인 2020년 03월 10일 21시 54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3월 11일 수요일
  • 1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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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필휘지 목색의 풍부함 탁월
곽석규 작 기명도.

우리 지역 미술사에서 누구를 언제부터 연보(年譜)를 시작해야 하는지를 가늠해 보았다. 큰 테두리에서 본다면 당연히 겸재 정선이다. 1733년 청하 현감으로 제수 되어 온 겸재 정선이 남긴 ‘갑인추 정선’이란 각자와 ‘내연산삼용추도’ ‘청하읍성도’ 등 청하를 배경으로 한 그림 5점은 겸재의 화력에서 기념비적 이정표가 되는 작품으로 한국미술사에 우리지역을 알리는 데 큰 문화적 자원으로 작용하고 있다.

겸재 정선은 한국, 즉 조선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겸재 정선을 첫 인물로 정하기에는 한국미술사 차원에서 워낙 큰 인물이다. 또한 겸재가 국내 주요 명승지에서 불멸의 명화를 많이 남겼던 다른 지역에서도 겸재 정선을 대표성을 띠는 작가로 내세우는 연유가 있기에, 겸재를 특별한 인물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순박하게 지역 미술사에서 과연 누가 첫 인물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10년 전 지역 출신으로서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서화가가 있었다. 바로 곽석규이다. 그는 근대기에 대구·경북지역에서 서화예술 부문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적잖은 수량이 보존되고 있고 거래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인물사진을 비롯한 그의 개인사에 대한 기록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곽석규의 본관은 현풍(玄風), 호는 석강(石岡)이다. 수묵 산수화를 잘 그렸으며, 기명절기의 작품을 즐겨 그렸다. 1862년(철종 13)에 출생하여 과거에 뜻을 두고 면학하던 10세 즈음 우연히 길가에서 얻은 ‘십죽재화보(十竹齋畵譜)’와 ‘개자원화전(介子園畵傳)’을 보고 흥미를 느껴 서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곽석규는 일찍이 대구지역 일대에서 서화가로 왕성하게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아 유교 정신이 흐르는 가풍에서 성장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석재 서병오와 지기지우였다는 사실로 보아 이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석재 서병오는 1922년 대구에 근대적 서화교육기관인 ‘嶠南詩書畵硏究會’를 설립하여 민족적 정신을 배양하는 데 힘썼던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과 친한 벗이었다는 사실은 웬만한 인품과 학식을 갖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인연이다.

그리고 이당 김은호의 ‘서화백년’이라는 서적에 곽석규에 대하여 평하기를 “청하에 살면서 산수를 잘 그렸다“라는 짧은 한 줄이 나온다. 이당 김은호는 구한말에 뛰어난 인물 묘사 실력으로 대한제국 순종황제의 얼굴을 그렸던 최고의 작가이다. 비록 한 줄로 곽석규에 대한 실력을 평하였지만, 이당 김은호의 한마디는 상당한 경지의 실력 아니고서는 거론되지 않았을 것이다.

경북 청도에서도 곽석규를 선각자로 기록하고 있다. 2014년 ‘청도 근대미술작품 초대전’에 쓰여진 글을 발췌한 내용이다. ‘서화가 석강 곽석규는 경북 영일 출신으로 청도로 이주하여 작품 활동을 펼쳤는데, 특히 석재 서병오와 교우가 깊어 그와 함께 대구, 서울지역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하기도 했다.(중략) 하지만 그가 청도 언제, 어느 지역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펼쳤는지 확인할 수는 없다’(중략)” 이러한 일면을 보았을 때 곽석규는 대구를 중심으로 포항(영일)과 청도를 왕래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곽석규 作.

구한말과 1900년대 일제강점기에 곽석규는 석재 서병오와 함께 대구와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을 돌아다니며 활동을 하였다. 중국 서화를 많이 수집하였고 서병오와 합작하여 그린 그림도 꽤 전하고 있다. 소장가 홍두선이라는 분이 2008년 서울 역사박물관에 기증한 12폭 ‘합작잡화병(合作雜畵屛)’에 안중식(安中植) 4폭, 이도영(李道榮) 2폭, 그리고 서병오 3폭, 곽석규 3폭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있다. 안중식, 이도영, 서병오는 일제강점기에 민족적 독립을 위해 그림으로써 항일 정신을 투철하게 펼쳐 왔던 인물이며 한국근대미술사에서 선각자로 기록되고 있다. 곽석규가 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은 한국 서화예술사에 그의 위치와 예술관을 짐작케 한다.

한 번의 붓질로 구도와 형상을 감각 있게 단숨에 그려낸 것으로 보아 곽석규가 타고난 작가임을 알 수 있다. 일필휘지의 화필에서 느껴지는 정확한 사생력과 습윤적인 묵 색의 풍부함은 내적인 자신감에서 오는 단단한 아름다움이 탁월하다. 초기에는 주로 사실의 채색화를 그렸는데, 40대 이후에는 서병오의 권유로 주로 수묵 산수화를 그렸고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 송대의 미원장(美元章)과 원대의 고극공(高克恭) 등의 화풍을 따랐으며, 만년에는 자신만의 색깔을 창출함으로써 일가를 이루었다. 수묵화는 용묵의 힘과 농담의 조화가 천연자재(天然自在)하여, 신운(神韻)의 생동이 느껴져 곽석규의 등장 이후로 그를 앞서는 작가가 없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한다.

곽석규作.

곽석규를 조사 연구하면서, 지역 출신 석곡 이규준(儒醫)과 석강 곽석규, 우송 신대식(서예)이 서병오를 중심으로 각각 스승과 친구, 그리고 제자 사이로 인하여 우리지역 근대기 문화환경의 맥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비록, 이들 4인이 연배는 달라도 서병오의 자택에서 주요 인사들이 매일 북적 되던 사랑방에 우연 또는 자연스럽게 서로 만나 안면을 터고 지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이들의 존재는 우리지역 근대 문화예술사에 인문학적 스토리텔링화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도 만든다.

곽석규에 대한 흔적을 우리지역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고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다. 이러한 일면들은 아마도 외딴 작은 어촌인 우리 지역에는 아직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 조차는 물론, 뿌리 문화에 대한 인식 부재와 척박한 환경이 곽석규 인물을 알 수 없게 끔 만들었던 요인이 작용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된다. 여기에다 서양미술이 대세인 현대미술사에서 전통 서화작품이 관심에서 멀어지는 요인도 한몫 했다고 여겨진다. 곽석규를 기점으로 옛 지역 작가들의 자료를 찾고 연구하고 기록하는 분위기 조성이 다시 한번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포항미술사도 곽석규와 장두건으로 인하여 어언 1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깊이와 넓이를 획득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지역민들은 외부지역 대도시의 미술사는 많이 알고 있으면서, 진작 우리지역 미술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층들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은 지역작가들부터 개인의 연마와 함께 우리 지역 미술사를 숙지하는 자세를 함께 취한다면 한층 더 깊이 있고 풍요로운 예술세계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자연스럽게 지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박경숙 큐레이터·화가
박경숙 큐레이터·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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