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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I Love 미술] 미디어 아티스트 박현기를 그리며…
[김진혁의 I Love 미술] 미디어 아티스트 박현기를 그리며…
  • 김진혁 학강미술관장
  • 승인 2020년 03월 25일 16시 13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3월 26일 목요일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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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학강미술관장
김진혁 학강미술관장

1974년부터 1979년까지 더운 여름이면 대구현대미술제가 열렸다. 당시 대구백화점 내에 ‘큐빅’이라는 실내건축사무소가 있었다. 사무실 소장은 박현기였다. 직육면체의 ‘큐빅’이라는 상호는 박현기 작가가 평면이 아닌 3차원의 세계를 다루고자 한 자신의 이미지를 나타낸 핵심 단어였다. 그 조그마한 사무공간은 건축을 전공하고 고향 대구로 와서 자신의 꿈을 펼쳐 보이려는 실험 연구소 같은 장소였다.

1942년 오사카에서 출생하여 능인중학교와 대구공고를 거쳐 홍익대를 졸업하였다.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멋을 아는 패셔니스타에 건축가 겸 미술가였다. 굵직한 음성에 사람 간의 만남을 좋아하였고, 유난히 술을 좋아하여 주변에는 다양한 계층의 지인들이 모였다.

여름이면 강정 낙동강변에 가서 돌, 나무, 물을 이용한 영상미디어 작업을 시도하였다. 이어 자신의 존재와 TV모니터를 합일시킨 퍼포먼스도 펼쳤다. 그는 항상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시간과 공간에 관심을 가졌다. 가령 물체의 형상이 있을 때 실공간의 사물과 둘러싼 허공간에 초점을 맞추어 물(物)이 하나로 융합되는 과정을 찾았다. TV모니터와 자연물의 만남, 모니터에 나타난 자연의 움직임 등 새로운 한국적 이미지를 미디어에 적용하고자 모색하였다.

그가 처음으로 영상예술을 차용하고자 한 것은 백남준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후 한국의 고건축과 고미술에 심취하였고 덧붙여 일본의 모노하의 친구들에게도 간접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1979년 상파울로비엔날레, 1980년 파리비엔날레에 참가하였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오브제인 모니터와 자연물을 결합시킨 작업을 선보였다. 1981년에는 ‘pass through the city’(도심을 지나며)에서는 트레일러 위에 거울을 부착한 대형바위를 싣고 대구 도심을 통과하였다. 그 과정을 촬영하여 바라보는 관객과 거울에 비치는 여러 요소들을 자각하게 하는 특별한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이어서 ‘Media as translators’(전달자로서의 미디어)는 1982년 강정 낙동강변에서 총 6개의 퍼포먼스로서 1박 2일 동안 장소성과 몸으로 전개시켰다. 허 와 실의 인식에 관한 물음을 제시하였다. 건축, 사진, 드로잉, 입체, 미디어, 퍼포먼스 등의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한국현대미술의 중요한 작가로 나아가고자 했다.

박현기作. 신세계아파트 내 설치조각. 1989

일본의 작가와 화랑주, 건축가들이 대구에 오면 경주와 안동으로 함께 답사도 하며 우리문화의 해학과 골계미, 오리엔탈리즘에 깊이 심취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미디어 작업으로 연결시키고자 하였다.

그 후 옮긴 삼덕동 큐빅사무실에서 작업을 하다 저녁 무렵에는 이천동 고미술거리에 나타나 골동품가계에서 시간을 보냈다. 신라토기, 고려토기와 청자, 석물, 탱화 등에 관심을 가지며 작품에 활용할 소재를 건지기도 하였다. 얼마나 우리 고미술을 사랑하였는지 필자에게 “우리미술에 관한 숨은 이야기 야사를 써서 책으로 출간해보라”고 권하기도 하였다. 지역의 인기 있는 아파트 디자인설계에도 참여하여 조언과 지도를 하였다. 현재 몇 개의 석조조형물을 남겨두기도 하였다. 그가 만든 입체조형물은 큰 돌덩어리에 몇 군데 인공을 가하고 절단하여 의도적으로 다시 현현시키는 무기교의 메스(MASS)를 보이고 있다. 영상작업의 말년작인 ‘만다라’시리즈(97~99)는 불교의 도상과 관능적인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다양한 스펙트럼의 세계를 펼쳤다. 그 당시 광주비엔날레에 이 작업을 출품하게 되어 작업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순수한 한국비디오아트의 선구자로 현실과 비현실세계,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에서 새로운 형식을 드러내는 현대미술가로 지금 시대는 그를 기억한다.

사후 15년 후인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박현기 대규모 회고전이 개최되었다. 근래에 많은 미술평론가들이 그를 재평가 되어야 할 현대미술가 상위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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