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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광장] ‘텃밭’에 살기 싫다
[아침광장] ‘텃밭’에 살기 싫다
  • 손화철 한동대 교수
  • 승인 2020년 03월 29일 16시 28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3월 30일 월요일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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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지난 세월 동안 이런저런 선거에 투표를 안 한 적은 없지만 필자가 지지한 후보들은 대부분 낙선했다. 어차피 마음에 드는 이가 별로 없으니 차라리 표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기로 한 까닭이다. 지지하는 진영에서 될 사람을 밀어주는 소위 ‘전략투표’보다는, 낙선이 분명해도 괜찮아 보이는 후보에게 표를 주었고, 혹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이 확실하면 두 번째 마음에 드는 후보와 정당에게 투표했다.

물론 이렇게 사표(死票)를 발생시키는 방식이 정상적이라거나 이상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늘 지지를 보내준다는 이유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텃밭’ 취급을 받는 것보다는 이 방법이 낫다고 믿는다. 유권자가 주권자인데, 텃밭 취급을 받는 것은 가당치 않기 때문이다. 나는 텃밭에 살기도 싫고 누군가의 충성스런 지지자가 되기도 싫다.

‘텃밭’은 집 바로 옆에 있어 정겹기도 하고 나름대로 소중하다. 하지만 농부가 가장 정성을 들이는 밭은 아니다. 답답하면 반찬거리라도 얻으러 오는 게 텃밭이지만, 진짜 논밭에 급한 일이 생기면 텃밭은 미련 없이 버려지게 마련이다. 텃밭 노릇 열심히 해 봐야 되는 일은 없고, 나중에 욕해 봐야 돌아오는 건 갑질뿐이다.

그러니 텃밭으로 규정되는 것은 지역의 입장에서 심대한 모독이고, 하물며 유권자가 텃밭을 자처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나는 중요하지 않으니 나를 지나쳐 진짜 논과 밭으로 가라고 하는 것인데, 이렇게 한쪽에 몰아주는 표가 진정한 사표다. 바둑에서건 협상에서건 누구든 예측 가능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진다. 유권자도 예측 가능하게 움직이면 후보자에게 진다.

그런데도 여전히 속된 말로 개에게 공천을 주어도 당선된다는 곳들이 있다. 이런 곳에서는 공천이 곧 당선이니까 선거보다 치열한 공천 다툼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정당과 정치 지도자들의 역학관계가 시민들의 판단에 앞서게 되니 지역이 발전할 리 만무하다. 당선이 보장된 마당에 지역을 위해 굳이 새로운 공약을 개발하려 애쓰지 않고, 선출된 뒤에도 다음 공천에만 마음이 가 있으니 정작 지역은 뒷전이다. 생색내기 공약은 비현실적이거나 하나 마나 한 것들을 내놓으면서 뜬금없는 이념과 체제 논쟁이나 일삼는다. 물론 권력에 취한 이들 덕에 한동안 부정한 돈 폭탄이 지역에 쏟아질 때도 있는데, 보통 몇 년 있다가 쪽박 차고 누군가 감옥에 간다.

상대적으로 매 선거마다 여러 정당이 번갈아 승리하는 지역구들은 내실 있게 흥한다. 소위 ‘접전지역’은 모든 당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뛰어들기 때문에 참신하고도 알찬 공약들이 쏟아진다. 후보자들이 겸손해지는 건 물론이고 정치인의 갑질과 비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20대 국회의 역대급 분탕질에 이은 사상 최악의 공천 서커스 때문에 제대로 된 대표자를 뽑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번 선거를 그나마 유의미하게 만들려면 텃밭을 없애서 정당과 정치인들의 태도라도 바꾸어야 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각 정당 텃밭의 시민들이 자기 지역의 텃밭용 후보가 아닌 사람을 누가 됐든 국회의원으로 선출하는 것이다. 얼핏 말장난 같지만, 이렇게 해서 텃밭이 예측 불가능한 접전지역이 되면 우리나라 정치가 바뀌고 유권자가 존중받게 된다. 혹시 그렇게 투표해서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될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겠다. 아무리 미련하고 흉악한 정치인들을 모아놓은들 20대 국회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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