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5월 1일 전관…드로잉·유화·판화작품 등 140여 점 선봬

최영림 ‘너와 나’
전후 우리화단의 목가적 서정주의를 대변하는 작가 최영림 드로잉전이 28일부터 5월 1일까지 대구 대백프라자갤러리 전관에서 열린다.

최영림(1916~1985)은 토속적인 민담과 설화에 근거한 한국적 해학미가 가미된 건강한 에로티시즘을 구현했던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 받고 있다.

한국적 주제성과 현대적 표현의 토속적 정감 및 친근감이 남다른 서양화가 최영림의 작품세계는 처자식을 고향에 두고 온 월남 작가의 망향의식이 바탕에 짙게 깔려있다.

시공을 초월한 설화의 세계를 통해 따뜻한 모성 혹은 여성적 온화함을 희구한 그의 작품은 단순히 토속적이라기보다 실향민이 부른 망향 정신의 노래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현실세계의 고통을 환상적인 설화의 세계로 환치시켰다.
최영림 ‘창민이와 나’
그의 작품 세계는 캔버스에 고운 황토 가루나 모래를 접착제로 바른 후 물감을 칠한 위에, 목판화에서 영향 받은 선 중심의 간단명료한 묘사와 역동적 화면 구성이 그 특징이다. 전통성을 담보한 독자적 세계를 지향했던 그에게 드로잉은 그의 독창성을 일구는 토양이 되었다고 본다.

이번 대백프라자갤러리 특별기획으로 마련되는 ‘최영림 드로잉전’에서는 인간의 실존과 사물의 본질적 문제를 무겁지 않은 표현 양식과 경쾌한 조형언어로 탐구해 온 최영림에게 드로잉이 갖는 다양한 의미를 각 시대별 대표작들을 통해 살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1916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한약방을 경영하던 집안에서 3남3녀 중 장남으로 출생한 최영림은 평양 광성(光城)고등보통학교 재학시절 평양박물관 학예사(일본인) 오노 다타아키(小野忠明)로부터 판화를 사사받은 후 일본판화협회전에 출품해 입선하면서 미술에 입문했다.

이후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1935) 입선하며 일본 유학(동경 태평양미술학교)을 통해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시작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귀국해 평양에서 장리석, 황유엽, 박수근 등과 함께 미술활동을 펼쳤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월남한 그는 경남 마산에서 피난생활 후 활동무대를 서울로 옮겨 국전, 창작미협전, 한국판화협회전 등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화단활동을 시작했다. 월남이후 그의 작품세계는 3가지 형태로 크게 구분될 수 있는데 ‘흑색시대’, ‘황토색 시대’, ‘설화시대’로 나눠 볼 수 있다. 그리고 화풍 형성과 전개과정에 ‘표현주의적 경향’과 ‘피카소의 영향’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최영림 ‘흑백시대’
이번 드로잉 특별전에서는 인체와 풍경, 정물 등 다양한 주제를 표현한 드로잉 작품 60여점과 ‘흑색시대’, ‘황토색 시대’, ‘설화시대’로 구분되는 주요 유화작품, 판화 등 총 70여점이 선보인다. 연필화와 펜화, 수묵, 과슈, 유채 등을 비롯해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제작된 유화작품 속에는 최영림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살펴보기에 충분할 것이다.
최영림 ‘누드’
최영림의 드로잉 작품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인상들은 현실 속 여성이 아니라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 여인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전후 피폐한 현실이 아니라 낙원에서 노니는 여성 혹은 모자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러한 여인들은 신비로운 자연과 함께 그려져 있다. 꽃이 만발하고 새들이며 짐승도 어울려 합창하는 봄동산에서 꿈을 꾸는 듯 작품 속 여인들은 밝고 청순하며 옷가지마저 훌렁 벗어버린 채 뛰어논다. 그 나부들은 특히 최영림만의 독특한 해학성과 매혹적인 에로티시즘 예술을 낳고 있다. 이러한 인물들은 온갖 꽃이 피어있는 낙원의 자연 환경 속에 그려져 순수한 화면을 창출하고 있다.
최영림 ‘백조’
이처럼 최영림은 여성 이미지를 통해 태고(太古)적 모든 존재의 시작을 암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여성이 갖는 생명 창조의 신비를 그려내고 있다. 이는 생명예찬 혹은 여체예찬과 연결되는 최영림식 나부 작업으로 보아도 무관할 것이다. 흙은 모든 생물이 태어나고 자라며 죽어가는 순환의 장소이자 어머니의 품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속 풍만한 가슴과 기이하게 큰 얼굴, 왜곡되고 과장된 몸매의 나부표현은 단순히 욕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모성본능 혹은 망향정신이 스며든 조형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추상적인 화면 속에서 어렴풋이 드러나는 여체는 사실적인 인체의 모습을 나타내려 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탄생시키는 생명력의 창조자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 속 여체는 단순한 소재 차원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의 복합체라 할 수 있다.
최영림 ‘자화상’
중앙대학교(서라벌 예술대학) 교수로 활동했던 최영림은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작품 50여점을 1985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직접 기증한 후 작고했으며, 2008년에는 일본 아오모리 현립 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공동 기획한 ‘최영림 무나카타 시코’展을 덕수궁미술관에서 개최해 그의 일본시절 스승인 무나카타 시코 사이의 사승관계에서 비롯된 두 사람의 작품세계의 유사성과 차별성을 비교 조명하는 회고전을 가지기도 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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