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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설] 대변인의 개그
[삼촌설] 대변인의 개그
  • 설정수 언론인
  • 승인 2020년 05월 25일 16시 23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5월 26일 화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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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 경연에 나온 신하들에게 물었다. “경들은 나를 전대(前代)의 제 왕들과 비교해 볼 때 어떤 임금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가?” 한 신하가 “요임금이나 순임금과 같다”고 대답했다. 사간원 정언 직책의 학봉 김성일이 대답했다. “요순 같은 성군도 될 수 있고, 걸주 같은 폭군도 될 수 있습니다.” 선조가 그 이유를 물었다.

“전하께서는 천부적인 자질이 높고 밝으시니 요순 같은 성군이 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겨 신하가 간(諫)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병통이 있습니다. 이는 걸주가 망한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선조의 안색이 바뀌자 신하들은 선조가 화났다는 것을 직감하고 벌벌 떨었다.

이때 류성룡이 나서서 말했다. “두 사람 말이 모두 옳습니다. 요순 같다고 한 말은 임금을 그렇게 인도하려는 말이고, 걸주에 비유한 것은 경계하는 말이니 모두 임금을 사랑해서 한 말입니다.” 선조는 얼굴빛을 고치고 술을 내렸다. 김성일은 왕실의 잘못 뿐만 아니라 임금의 잘못에 대해서도 서릿발 같은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임금이 싫어하는 기색이 보여도 거리낌 없이 간했다. 조정 관리의 불의와 부정을 보면 사정없이 탄핵해 바로잡았다.

“오늘날 나라 일을 맡은 자들은 오직 눈앞의 일만 처리해 구차하게 세월 보내기를 계책으로 삼고 있다. 사사로움을 좇아 일을 처리하면서 ‘부득이하다(不得己)’라고 둘러대고, 고치기 어려운 폐단이 있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無奈何)’하니 ‘부득이 무내하’ 이 여섯 자야 말로 나라를 망치는 말이다. 요즘 같이 기강이 해이해진 시기에 정령을 시행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바가 없지 않지만 위에 있는 자들이 만약 과감한 뜻으로 쇄신해 백관들을 독려하면 천하에 어찌 끝내 고치지 못할 폐단이 있을 것이며 어찌 참으로 부득이한 일이 있겠는가.”

조선 후기 순조, 현종, 철종, 고종 등 4조에 걸쳐 63년 동안 벼슬살이를 하면서 국정 폐단을 꿰뚫어 본 이원조의 시국비판이다. 최고 통치자에 대해서도 가차없는 비판을 서슴지 않은 공직자의 영혼이 조선조 500년을 지탱하는 힘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을 태종에 비유한 청와대 대변인의 ‘문비어천가’가 개그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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