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올해 한국의 인구 흐름에서 주목할 사항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1958년 태어난 개띠들 국민연금 수령 개시와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은 인구 자연 감소의 시작, 그리고 65세 이상 고령 인구 15% 돌파가 그것이다. 하나같이 국민 경제에 상당한 파급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이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그늘은 인구 절벽이라는 이끼를 키운다. 지난해 11월은 처음으로 인구수가 줄어든 달이다. 12월이 아닌 11월 감소는 초유의 현상. 전체 인구 규모가 쪼그라드는 추세가 현실화된 것으로 전문가는 분석한다.

영화 ‘조 블랙의 사랑’은 65세 생일을 맞은 남자의 얘기다. 두 딸을 가진 거부인 그에게 저승사자가 찾아온다. 자신을 즐겁게 만들면 생존 시간을 늘리겠다는 약속으로 둘은 함께 생활한다. 작은 딸과 사랑에 빠진 저승사자는 그녀를 데리고 황천길을 가려다가 마음을 바꾼다. 회사를 빼앗길 음모에 처한 주인공을 돕기로 한다.

‘65’라는 숫자는 이 시놉시스 주요 화두인 듯하다. ‘65세는 일평생 단 한 번뿐’이라는 대사도 나온다. 아빠의 65세 생신날 파티를 준비하는 맏딸의 상상력도 화려하다. 허드슨 강변에서 불화살을 쏘아 ‘65’를 그리는 방안을 고민하기도 한다. 숫자 ‘65’는 사멸에 대비할 때라는 감독의 심오한 배치가 아닐까.

우리가 65세를 노년 기준으로 정한 것은 1950년대 중반이다. 어언 칠십 년이 되어 가는 구닥다리 잣대. 요즘 나이는 0.7을 곱해서 계산하기도 한다. 영양 섭취와 건강 상태가 좋아진 탓이다. 그럴 경우 옛날 65세는 무려 92세에 해당한다.

고령 복지 혜택은 다양하다. 지하철 탑승과 공공시설 무료입장에다가 기초 연금 지급과 동네 의원 진료비 할인 등등. 공자의 사상을 민족정신으로 삼는 중국 대륙은 어떨까 궁금하다. 뭣보다 여행 경비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는 유명 관광지 요금은 면제다. 외국인도 여권을 제시하면 된다.

중국은 성(省)마다 노인 우대 표준이 달랐다. 산둥 성 취푸 문묘와 산시 성 시안의 화청지는 65세, 쓰촨 성 청두의 도강언과 무후사는 60세였다. 덕분에 청두 구경의 만족감은 배가됐다. 경제학의 소비자 잉여처럼 말이다. 혹시 중국을 탐방할 시는 참고하자. 공짜는 걸음을 즐겁게 만드는 법이다.

청나라 강희제 회갑연도 의미심장하다. 황제의 환갑잔치에 전국 65세 이상 어르신 2800명을 대궐로 초청했다. 이틀에 걸친 성대한 천수연. 만석과 한석을 갖춘 잔칫상인 ‘만한전석’을 벌였다. 당시 조선의 왕들은 평균 수명이 46살에 불과했으니 대단한 장수다.

철학가 김형석 교수는 지금도 강연과 집필 활동이 왕성하다. 1920년생이니 백세 인생 제3막에 진입한 셈이다. 그분을 보면 연령은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학자는 말한다. 살아 보니 인생은 60∼75세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인격적으로 한층 성숙하고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시기라고.

중장년은 생의 재구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직장과 가족을 위해 정신없이 달려왔던 변곡점에 서서 새로운 청사진을 그릴 계제이다. 이제는 포기할 것과 다시금 도전할 것을 정리할 단계이다.

그 방향은 자명하다. 후회 없는 삶. 죽음을 앞둔 회한은 쓰리게 아프다. 한때 꿈꿨던 일들을 들춰내자. 외국 여행·언어 학습·그림 공부·글쓰기. 장밋빛 여생은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나는 날마다 노모께 안부하고 수시로 찾아뵙는다. 어쩌면 통한의 가슴앓이 목록을 지우려고.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