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가 낙양현 현위(縣尉)로 있을 때였다. 현위는 지금의 경찰서장과 판사를 겸하고 있는 직위다. 그 현의 치안 유지와 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낙양현에 부임한 조조는 곧 사방의 성문을 개수하고 성문 좌우에 10여 개의 오색 방망이를 걸어놓았다. ‘성문 출입의 법규를 범한 자는 누구 할 것 없이 이 몽둥이로 쳐 죽인다’는 경고문까지 성문 게시판에 붙여놓았다.

그 후 한동안 성문을 지나는 사람들이 법규를 잘 지켜 치안도 안정되어갔다. 그러던 중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권력 실세 건석이란 환관의 숙부가 밤 늦게 성문을 지나다 법규를 위반했다. 그 숙부는 평소에 조카의 권세를 업고 안하무인으로 거들먹거리던 자였다. 조조가 몽둥이를 들자 숙부란 자가 소리쳤다. “내가 누군데 이렇게 무례하냐. 나는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건석의 숙부다. 네 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조조에겐 숙부의 협박은 마이동풍이었다. 조조는 눈 하나 깜빡 않고 그를 몽둥이로 쳐 죽였다. 이 소문이 성 안에 퍼지자 조조를 향한 백성들의 칭송과 환호가 성 안을 덮었다.

진시황의 생모 황태후 조씨는 태감을 사칭한 노애라는 자와 사통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두 아들까지 태어났다. 조 태후의 총애로 장신후(長信侯)에 봉해진 노애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그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군주를 모시는 신하들과 싸움이 벌어졌다. “나는 황제의 아버지다. 어찌 너희들이 나와 맞서려 하느냐.” 노애는 호통쳤다. 이 말을 들은 신하가 진시황에게 자초지종 모든 사실을 알렸다. 진시황은 노발대발, 노애를 당장 잡아들이라 했다. 노애는 두려워 한 나머지 반란을 일으켰지만 진시황이 파견한 진압군에 패해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을 당했다. 조태후와 노애 사이에서 태어난 두 의붓 동생은 몽둥이로 쳐 죽였다. 어머니 조태후는 부양궁으로 옮겨 유패 시켰다.

이처럼 권세를 업은 오만방자의 말로는 비참하다. 조국 아들 허위 인턴증명서 발급 혐의로 재판받던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가 재판 중 “기자회견에 가야 한다.”며 재판을 끝내달라고 한 것은 권력형 오만방자의 코미디다. 역사에서 오만방자의 말로는 모두 비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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