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싹을 밀어 올리는 양파가 있었다
감자도 아닌데 싹을 옮겨 심어주려는 사람이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싹싹 비는 양파가 있었다
양파를 달래려고 먼저 울던 사람이 있었다
감자 대신 꿇어앉아 벌을 서던 양파가 있었다
양파보다 더 반질반질한 무릎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양파보다 더 빨리 눈이 짓무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 때문에 뚝 울음을 멈추는 양파가 있었다
양파에게 보따리를 내밀던 사람이 있었다
감자들에게 양파는 하고 물어보면
저요, 저요 하고 구석이 쏟아져 나왔다
붉은 자루 속에 푸른 손이 가득 들어있었다


<감상> 양파는 속이 여러 겹이지만, 언제나 같은 빛깔과 속을 보여준다. 얼마나 순수하고 한결같은 얼굴을 보여주는가. 순한 얼굴에 다면적인 인격을 지닌 자들을 양파 속성에 빗대지 말자. 양파는 씨앗으로 심겨지고 노란 싹을 밀어 올리는 게 속성이다. 양파의 본질을 깨뜨리려는 사람들은 뭔가. 양파보다 더 비굴하고, 속과 겉이 다른 피조물이 바로 인간이다. 양파같이 우둔한 사람을 붉은 자루에 담듯 억지로 입양하지 말자. 양파의 푸른 손은 다 자라서는 자신의 꼬리마저 스스로 땅에 눕힌다. 세상 사람들아, 양파스러운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면 안 되나.(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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