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배달하러 가는 고래의 등에
무인감시카메라가 작살을 꽂는다

120도 아니고 100은 더더욱 아닌 시속 78km에
작살을 맞은 고래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며 헤엄쳐간다

다리가 퇴화한 지느러미로 달아나다 보면
어느덧 둥근 바닷가에 선다
막다른 곳에서 고래는
퇴화하지 못한 자신의 다리를 본다

지느러미를 흔들며 바다로 들어가던 고래,
누워있는 딸의 얼굴을 떠올리며 되돌아 나온다

늘 물건을 배달하러 달려가는 길 뒤에서
핸드폰으로 위치를 추적하는 사장과

난파선 안, 위태로운 모습으로 고래를 바라보는 가족이
왕복 2차선 도로의 제한속도 60km의 길로 숨어든다

달려가는 꿈을 좇아 카메라가 움직이며
작살을 쏜다, 쏜다, 쏜다
가는 길이 파도에 부서지는 모래알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퇴화한 뒷다리 같아서
단단하게 포장된 물건을 흔들어본다

좁아진 차선 위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무인감시카메라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고래의 등이 시려 온다



<감상> 오토바이 배달부는 속도가 생명이기에 과속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속도 위반 딱지는 사내의 등에 작살을 꽂는 셈이다. 병든 딸과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가장의 지느러미는 퇴화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일자리마저 사라질까봐 두려운데, 위치를 추적하는 사장의 감시는 더 사납다. 고래는 왜 육지를 버리고 바다로 갔을까. 고래의 후예인 인간은 고래처럼 자유롭게 유영할 수 없는 것일까. 사내는 바다로 떠나고 싶으나 떠날 수 없기에 정말 등이 시리다. (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