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와 상추와 딸기와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었다
해바라기와 케일과 샐비어 씨앗도 뿌렸다

매일같이 조리개로 한가득 물을 주고
퇴비도 주고 잡초도 솎아주었다

양껏 물을 머금은 식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키가 자랐고
가지를 자르고 지주대를 박자 줄기들이 꼿꼿하게 올라왔다

중심을 잡아줘야 열매가 맺힐 거라 생각을 했다
문득, 중심이 사라져야 바람이 춤을 출 거란 생각을 했다

지주대를 뽑아버리자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휘청거리던 식물들
한쪽이 다른 한쪽으로 비스듬히 무너지면서 오롯해지고 있었다

심지도 뿌리지도 않은 민들레 한 송이가
화단 모서리 콘크리트를 비집고 칠렐레팔렐레 춤을 추고 있었다

빛도 물도 흙도 없이 바람만으로 온 세계를 뒤흔들고 있었다



<감상> 그냥 이랑을 만들고 고추를 심어도 열매를 잘 맺던 시절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땅에다 비닐을 덮고 고추를 심고 좀 자라서는 지주대를 세웠다. 소출을 위해 더 촘촘하게 심고 지주대로 모자라 끈이나 줄로 테두리까지 친다. 스스로 중심을 잡을 줄 아는 식물의 힘을 무시한 처사다. 바람이 드나드는 틈을 주지 않으므로 오히려 태풍에 약하다. 요즈음 학부모의 자식을 양육하는 모습이 이러하니 얼마나 씁쓸한 일인가. 과감히 지주대를 뽑고 바람이 춤출 수 있는 여지를 준다면 오롯이 잘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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