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상점 등 저지대 쑥대밭…배수펌프·물막이도 무용지물
"동해선 철길이 피해 더 키워"

수해가 난 영덕군 강구면 오포리에서 24일 주민과 자원봉사자 등이 침수 피해를 본 물품을 청소하고 있다. 이은성 기자 sky@kyongbuk.com

“3년 연속 침수가 났습니다. 이러면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 아닙니까?”

영덕에는 23일부터 이틀 동안 213.2㎜의 비가 내렸다.

강구면은 258.0㎜ 강수량을 기록했다.

강구면에는 지난 23일 오후 11시부터 24일 오전 2시까지 125㎜의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이로 인해 강구면 저지대인 오포리에서 현재까지 70가구가 침수되는 피해가 났다.

오포리 저지대 주택에는 성인 목 높이에 해당하는 약 1.5m까지 물이 차오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집마다 방안까지 물이 들어차 가전제품이나 세간살이를 못 쓰게 만들었다. 일부 주민은 세간살이를 밖으로 꺼내놓기도 했지만, 상당수 주민은 희망을 잃은 듯 고개만 젓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2018년 10월 태풍 콩 레이, 2019년 태풍 미탁으로 3년 연속 똑같은 침수 피해를 봤기 때문이다.

콩 레이나 미탁 때보다 수위가 낮았다고 하지만 집이 침수되는 바람에 장판이나 벽지, 세간살이 등이 못쓰게 된 것은 마찬가지다.

상점에도 못 쓰게 된 집기나 물품이 많았다.

한 분식집은 식료품을 다 버렸고, 옷가게는 옷이 다 젖어 정상적으로 팔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으며, 슈퍼마켓은 아래쪽에 있던 물품이 진흙에 묻혀 있었다.

한 식당 상인은 “오늘 팔려고 준비해둔 채소를 비롯해 다 못 쓰게 됐다”고 말했으며, 다른 상인은 “상점 바로 옆 살림집에도 물이 차서 이불이며 옷이며 다 버렸고 식당 안도 다 침수돼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60대 주민은 “오포리에 배수펌프 4대를 설치해 뒀지만, 밤 11시 30분부터 무릎까지 물이 차올랐는데도 군에서 가동할 사람이 안 오고 전화를 해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며 “새벽 3시에 겨우 사람이 와서 1대만 가동했다”고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주민은 “군이 배수펌프 한 대를 한 달 빌리는 데 200 만원 든다고 했으니 4대를 1년간 빌리면 돈이 1억 원에 가깝다”며 “실컷 돈 들여서 펌프를 빌려놓으면 뭘 하느냐. 무용지물인데”라고 주장했다.

오포리에 있는 강구초등학교 운동장은 진흙탕이었다.

상류에서 내려온 물과 진흙이 뒤섞여 있었다.

주민에 따르면 군은 24일 새벽 중장비를 동원해 초등학교 담장을 부숴 물이 빠질 수 있도록 했다.

초등학교 인근 주민은 “매년 여기 물이 차는데 미리 물이 빠질 수 있도록 조치를 하지 않으니 매년 이곳에 물이 고였다가 주변에 역류한다”고 주장했다.

도로는 진창으로 변했다.

영덕군과 주민은 살수차나 수돗물을 이용해 집이나 도로에 쌓인 흙을 씻어내느라 분주했다.

저지대 주택 출입문에는 군청에서 설치한 물막이가 있었다.

널빤지를 끼우면 해당 높이까지 물이 들어올 수 없도록 하는 구조물이다.

그러나 물막이 높이가 30㎝ 정도에 불과해 침수 피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최필봉(78) 씨는 “물막이보다 훨씬 높게 물이 들어차니 아무 쓸모가 없다”며 “군에서 쓸데없는 데 돈을 썼다”고 비판했다.

오포리에서 7번 국도와 화전 천을 지나면 나오는 강구중학교와 강구정보고등학교도 일부 교실이 침수되는 피해를 봤다.

상당수 주민은 2018년 초 개통한 동해선 철길로 인해 피해가 커졌다고 주장했다.

오포리 남서쪽 계곡에 있는 화전리 들판 복판 약 10m 높이에 강구 역이 들어서면서 철길 둑이 생겼다.

산과 산 사이를 잇는 전체 길이 약 340m, 높이 10m에 이르는 둑이 물을 가두는 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 철길 둑은 한 모퉁이에 도로와 하천 부분 30m 길이 구간만 뚫려 있다.

이곳으로 빗물이 집중되면서 마을 길을 타고 지대가 낮은 오포리 일대를 덮쳤다는 것이 주민 주장이다.

이를 반영하듯 철길 둑 주변 화전 천 둑 곳곳이 무너져 있었다.

둑 주변 전봇대도 쓰러지는 바람에 복구공사가 한창이었다.

오포리 주민 장모(68)씨는 “한 해는 재난일지 몰라도 3년 연속 비 피해가 났다는 것은 군청 대처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큰소리로 외쳤다.
 

최길동 기자
최길동 기자 kdchoi@kyongbuk.com

영덕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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