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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40. 칠전팔기 빵장수 박기태 달구벌명인
[명인] 40. 칠전팔기 빵장수 박기태 달구벌명인
  • 전재용 기자
  • 승인 2020년 08월 09일 18시 06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8월 10일 월요일
  • 1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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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빵장수로 눈도장…단밭빵·강냉이빵 전 국민 맛 보는 게 꿈
박기태 제과제빵 직종 대구시 달구벌명인이 4일 대구 달서구 장기동 빵장수쉐프 본점에서 자신이 만든 빵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박영제 기자 yj56@kyongbuk.com

“전 국민에게 단팥빵을 먹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난 2013년 대구 중구 동인동 한 작은 가게에서 빵을 만들었던 박기태(48)씨는 현재 전 가쟁점을 합쳐 연간 300억 원대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빵장수’(㈜피쉐프코리아) 브랜드 대표로 우뚝 섰다. 8년 만에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빵장수가 된 그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며 빵장수로서의 꿈을 끊임없이 꾸고 있다. 전 국민에게 단팥빵을 먹이는 것도 가장 최근에 세운 목표 중 하나다.

△함께 가출한 친구와의 가위바위보가 ‘빵장수’ 만들었다.

박 대표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빵 만드는 일에 나섰다.

당시 공부가 싫어 친구와 가출했던 박 대표는 잠자리와 돈이 필요했고, 한 상가골목에서 친구와 가위바위보를 했다. 마주 보고 있는 중국집과 빵집 두 곳 중 어느 가게에서 일할지 정하기 위해서다.

박 대표는 “기분에 따라 순간적으로 가위바위보를 했고 나는 빵집으로, 그 친구는 중국집으로 일하러 갔다”며 “참 어린 나이였다”고 웃음을 지었다.

함께 가출했던 친구는 중국집에서 사흘 동안 일하다 박 대표에게 연락 없이 떠났다.

박 대표는 그 사실을 알고도 홀로 빵집에서 묵묵히 일했다. 한 달 급여는 8만 원이었다.

그는 “단팥빵이 100원에 팔리던 시절이어서 적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목숨을 유지할 정도만 월급을 줬던 것 같다”며 “노동법 자체가 없을 때라서 하루 16시간 일했고, 감기몸살 걸리면 하루 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가출한 이후 3개월 동안 빵집에서 일했던 박 대표는 자신을 찾아온 어머니를 뿌리칠 수 없어 다시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돈 버는 재미를 잊을 수 없었다. 2∼3개월 정도 검정고시학원에 다니던 그는 16살 나이에 다시 빵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박기태 제과제빵 직종 대구시 달구벌명인이 4일 대구 달서구 장기동 빵장수쉐프 본점에서 요즘 40~5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6.25 강냉이빵을 만들고 있다. 박영제 기자 yj56@kyongbuk.com

△“7번의 실패로 뼈저리게 깨달아”…빵 사업만 매진.

박 대표가 오로지 빵과 관련된 목표만 고집하는 이유는 7번의 실패로 느낀 바가 컸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돈을 벌었던 그는 20대 중반에 큰돈을 만지게 됐다. 돈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만큼, 다른 사업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박 대표는 유통사업에 뛰어들었다. 빵을 만들면서 신선한 재료를 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재료 사업은 생각대로 제대로 되지 않았고, 대형마트 입점 등 여러 시도도 물거품이 됐다.

박 대표는 “유통사업을 하다가 망하면 다시 빵을 만들어 팔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7번 정도 망한 것 같았다”며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때였다”고 전했다.

실패는 ‘빵장수’ 브랜드의 밑거름이 됐다. 부도로 자산을 탕진한 박 대표는 2010년부터 경남 김해에 있는 한 식품회사에서 일했는데, 자신이 빵 재료 유통사업을 할 때 원료를 가져다 쓰던 곳이다.

그는 “일거리가 없어 힘들었는데, 마침 원료를 썼던 식품회사에서 방 만드는 기술자가 필요하다고 스카우트제의가 들어왔다”며 “사업에 실패한 인물을 스카우트하는 게 쉽지가 않은데 능력을 인정받은 것 같았고 이후 영업하면서 자신감이 붙기도 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식품회사에서 일하던 박 대표는 2013년 중구 동인동에 빵집을 차렸다. ‘빵장수’의 시작이었다.

회사로부터 빵집 운영을 허가받은 그는 52.89㎡ (16평) 남짓한 공간에서 이탈리아 빵 ‘팡도르’를 만들어 팔며 860만 원까지 매출을 올렸다. 유통사업으로 재료에 대한 이해도 높아 빵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었다고 박 대표는 자랑했다.

박 대표는 빵집 운영이 바빠지면서 2014년 회사생활을 접고 ‘빵장수’에 매진했다고 밝혔다.
 

박기태 제과제빵 직종 대구시 달구벌명인이 4일 대구 달서구 장기동 빵장수쉐프 본점에서 진행된 경북일보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목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영제 기자 yj56@kyongbuk.com

△빵 매력 알리는 일도 중요…자녀들도 ‘빵사랑’.

매출 증대와 별개로 빵의 매력을 알리는 일은 박 대표가 세운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경북·대구지역 내 군부대에서 장병들을 상대로 제빵교육을 하고, 고등학교와 대학교 제과제빵과를 찾아 특강을 하는 이유다.

박 대표는 “세상을 살아보니 배려 없이는 못살고 베풀어야 하는 것을 깨달았다”며 “제과제빵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매력을 알리고, 매주 화요일마다 복지회관을 찾아 진행하는 봉사도 병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제과제빵을 공부한 학생들이 박기태라는 이름을 들어본 것 같다”며 “교육현장에 가면 3분의 1 정도가 저의 인생스토리를 알고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뿌듯해했다.

최근에는 유튜브에서 ‘빵장수박기태TV’ 채널도 운영 중이다. 일반 소비자에게 빵이 만들어지고 공급되는 과정과 현장을 모두 알려주기 위해 만든 채널이다.

박 대표는 “소비자들이 유튜브 채널을 보면 빵이 신선하게 만들어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소비자는 금방 만들어진 신선한 빵을 먹을 자격이 있다”며 “빵에 관련된 지식을 알면 소비자가 빵을 보는 수준이 많이 올라갈 것이고, 그 이후에는 모든 빵집이 위생과 품질 수준을 높이는 추가적인 효과도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 대표의 자녀들도 모두 제빵분야의 길을 걷고 있다. 첫째(24·여)와 둘째(22)는 회사에서 경영업무를 배우고 있고, 셋째(18)와 넷째(16·여)는 매장에서 빵을 만들거나 각종 대회에 나가려고 제품을 만드는 일을 연습하고 있다.

박 대표는 “빵 만드는 일을 알려주지만, 미리 설명하지는 않는다”며 “묻기도 전에 말해주면 잔소리로밖에 듣지 않기 때문에 궁금해하면서 찾아오면 알려주고, 묻지 않으면 알려주지도 않는다”고 교육에 대한 기준을 설명했다. 이어 “자녀들과 수시로 소통하는 편인데, 모두 만족스러울 정도로 열정적이고 제과제빵을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제과제빵 명인으로서 대구 대표 빵 브랜드 자리매김.

지난달 8일 대구시 달구벌명인으로 선정된 박 대표는 대전 성심당 튀김 소보루, 전주 풍년제과 초코파이와 같이 반야월의 연근(연잎)이나 팔공산 미나리 등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지역 대표 제과제빵 제품(브랜드)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 국민이 단팥빵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들고, 6·25 전쟁 이후 먹고 살기 힘든 시절 배급빵인 ‘강냉이빵’을 새로 출시해 주력상품으로 내세우는 것도 이 같은 계획 중 하나다.

박 대표는 “기성세대와 자녀들이 함께 어울려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들면 서로 인정하고 보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며 “그런 의미에서 전 국민이 우리 강냉이빵과 단팥빵을 하나씩 먹을 수 있도록 최고의 베이커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35년 동안 빵을 만들면서 수많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기도 했는데, 지금의 가장 큰 목표는 대구에 ‘빵장수’가 있다는 말을 듣는 것”이라며 “서로 돕는 세상, 배려와 봉사를 이어가면서 신선한 빵을 제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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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용 기자
전재용 기자 jjy8820@kyongbuk.com

경찰서, 군부대, 교통, 환경, 노동 및 시민단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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