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 협박당한 피해자 보호조치 없이 방치

18일 대구 성서경찰서는 달서구 한 식당 주인을 흉기로 찌른 뒤 불을 지른 혐의(살인 및 방화)로 60대 남성 A씨를 긴급 체포했다. 사진은 화재 현장. 소방안전본부제공.

지난 17일 오후 5시 44분. 대구지방경찰청 112 종합상황실로 남녀가 다투는 소리가 들리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 발생지는 대구 달서구 성당동의 한 음식점. 경찰이 도착하자 신고를 한 A씨(54·여)는 힘이 빠진 채 의자에 걸터앉아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도마에 있는 식칼을 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해당 사건을 데이트폭력으로 지정하고 용의자 B씨(60대)를 특수협박 혐의로 추적했다. 특수협박은 단체나 다중이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 상대방을 협박할 때 적용된다. 특수협박 신고가 접수되면 지역의 모든 순찰차가 출동하는 위험성이 높은 범죄다.

경찰은 A씨에게 B씨가 음식점으로 다시 나타날 수 있으니 집으로 귀가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A씨는 “저녁 예약손님을 받아야 한다”고 얼버무리며 가게 문을 닫지 못했다.

1차 출동한 파출소 소속 경찰들은 30여 분간 일대를 수색했지만, B씨를 찾지 못하고 철수했다. 2차 출동한 성서경찰서 형사과 소속 형사들이 성당동 일대를 수색하고 있던 오후 6시 55분. 대구소방상황실로 이 음식점에 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화재 현장에는 B씨에게 양쪽 뺨과 목덜미 쪽에 흉기로 수차례 찔린 A씨의 주검이 발견됐다.

식당 인근에서 B씨를 수색하고 있던 형사들이 있었지만, B씨는 홀연히 신고현장에 나타나 A씨를 살해하고 도주한 것이다. 저녁 예약손님을 걱정하던 A씨는 그렇게 화를 피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특수협박 범죄의 위험성을 간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류준혁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흉기를 들고 피해자를 직접 협박한 행위는 굉장히 위험도가 높다”며 “현장대응 초기에 위험도를 판단하고 한 명 정도는 피해자를 보호하거나 인근에서 감시하는 등의 대처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대구지방경찰청이 지난 6월 데이트폭력의 경우 단순 경미 사건도 현장에서 종결 처리하지 않고 추가 피해 가능성 등을 분석해 피해자 보호조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빈 소리가 됐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자에 대해 강제로 귀가나 보호조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용의자 검거를 위해 주변을 수색하고 탐문하는 사이에 사건이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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