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8일까지 2층 아트스페이스

최성임 ‘유리상자 ’
봉산문화회관의 기획, ‘유리상자-아트스타 2020’ 전시공모선정 작가展은 동시대 예술의 낯선 태도에 주목한다. 올해 전시공모의 주제이기도 한 ‘헬로우! 1974’는 우리시대 예술가들의 실험정신과 열정에 대한 기억과 공감을 비롯해‘도시’와 ‘공공성’을 주목하는 예술가의 태도 혹은 역할들을 지지하면서, 동시대 예술의 가치 있는 ‘스타성’을 지원하려는 의미이다.

4면이 유리 벽면으로 구성돼 내부를 들여다보는 관람방식과 도심 속에 위치해있는 장소 특성으로 잘 알려진 아트스페이스‘ 유리상자’는 어느 시간이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시민의 예술 향유 기회를 넓히는 데 기여하고,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들에게는 특별한 창작지원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에는 ‘최성임 - 강을 건너는 방법展’이 21일부터 10월 18일까지 대구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최성임 작가는 작가 노트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 작품은 내가 오랫동안 지속해왔던 작업으로, 공산품인 양파망에 플라스틱공을 끼워 넣어 매다는 일련의 작업 중 하나이다. 어렸을 때부터 익숙한 집을 둘러싼 이미지와 어른이 되어 가사일을 하면서 바라보는 풍경은 바닥에 서 있는 것들이 아니라 어딘가 매달려 있는 느낌들이 많았다. 베란다에 걸려있는 양파망과 마늘망이라든지, 처마 밑의 곶감이나 시래기, 무청, 계절이 바뀌면서 엄마의 일손이 바빠지곤 했던 집안의 풍경들, 마당에 널린 빨래들… 집 안에서 밖을 바라봤던 무수히 많은 시간들은 주로 매달려 있는 것들과 함께 한 것이다. 누워서 천장을 보거나 바깥의 하늘을 바라봤을 때, 매달려 있는 손길을 닿은 것들을 보면서 감정이입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저 양파는 죽어 있는 것일까, 살아있는 것일까, 고층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망에 공을 끼워 넣어 매달아 새로운 기둥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강을 건너는 방법’은 그 공 작업에서 출발했다.

생명의 어쩔 수 없는 유한함,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경직된 사회시스템, 집이라는 공간의 물리적 한계, 나 자신을 막고 있는 생각의 틀 등의 경계를 ‘망’으로 정의했고, 그 안의 ‘공’은 하나의 생명이나 예술, 혹은 아직 발현되지 못한 어떤 것도 될 수 있는 씨앗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일차원적으로 ‘가두고’와 ‘가두어진’의 ‘망’과 ‘공’은 작품 속에서 여러 색깔과 다양한 부피로 서로에게 무늬와 그림자를 드리우고 간섭하며, 처음과는 다르게 공존하며 낯선 풍경을 만든다. 무엇보다 하나의 공, 한 줄의 망으로는 시선을 두지 않은 사소한 것이지만, 가볍고 약한 것을 모아 거대한 부피로 만들고 거친 재료들에 시간을 넣어 다듬어서 새로운 힘이 생겼다. 작고 약한 것들의 군집이 만들어내는 무늬, 무게를 버티며 높이 서 있는 단위들, 매달려서 흔들리고 있지만 기둥이 되는 것들, 반복되는 작은 조각들의 존재감, 이런 것들에 믿음과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나의 작업실이 있는 서울과 작품이 전시될 대구까지의 정신적 물리적인 거리감, 유리상자라는 전시 공간의 특징처럼 갇혀져 있으나 주변에 반응하는 것에 대한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전시를 준비하는 기간동안에 직면한 코로나19라는 사회적 위기상황을 헤쳐나가는 것, 흡사 옛 사람들이 비옥한 땅을 찾아 강을 건너 이주해야만 하는 상황, 혹은 미래의 꿈을 좆기 위해 난관을 헤쳐 나아가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두려움은 직시하지만 굴하지 않고 딛고 일어서는 용기가 필요했고,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다른 장소와 시간을 관통하는 힘,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유리상자 전면에 수많은 공들이 들어있는 초록색과 푸른색의 망들이 강의 깊이를 만들며 덮고 있다. 그 사이에 작은 파도나 물보라 같은 하얀 띠가 중간을 가로지르고 있다. 매달려서 쏟아져 내리는 듯한 느낌, 반투명한 공이 자연광을 받아서 반짝이는 느낌은 강의 흐름의 표현이다. ‘강’의 흐름을 만들고 있는 두 가지 색의 충돌과 합류는 연약하지만 분명한 하얀색 띠에 의해 끊기거나 강조된다. 거대한 흐름에 작은 길을 낸 느낌으로 하얀 띠를 만들었다. 전시 공간인 유리상자 안을 하나의 ‘강’으로 표현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연한 물보라와 중간의 하얀 길이 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매일 하루하루가 내게는 강이었다. 하루로부터 하나의 전시로부터 혹은 한 시절부터 ‘강’은 하나의 관문, 시절, 시간의 흐름을 상징한다. 개울가의 작은 돌멩이와 강가의 큰 바위를 굽이치며 지나가는 물과 강처럼 시간은 거대한 줄기를 만들며 계속 흐른다. 그 곳에 물결과 함께하기도 혹은 그 사이를 건너가야 하는 나와 그리고 우리가 있다. 그동안 강의 큰 흐름을 읽으며, 자신의 무게를 지탱하며 수많은 물결들에 저항하며, 무언가를 지키며 동시에 많은 것들을 버려야 강을 건널 수 있었다. 내가 지나온 ‘강을 건너는 방법들’이 작업으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다.

그런 의미로 이 작품의 제목을 ‘강’이 아닌 ‘강을 건너는 방법’으로 정했다. 거대한 강이 있고, 이 강을 건너는 각자의 꿈과 방법이 있을 것이고, 그렇게 나아간다면 저 너머에는 다른 세계가 있으리라는 즐거운 결말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이다. 나는 절실했던 마음으로 손으로 만지는 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내며 이 강을 건너고 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자신만의 강, 건너온 강과 또 앞으로 건너갈 강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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