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사람이 의과대학에 가게 된 것이 불행의 시작이다. 사실 지금 의협 회장이나 의대 교수들이 입학하던 즈음까지는 의대의 문턱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성산(聖山) 장기려 박사는 교사와 엔지니어가 되려다 불합격하여 의과대학에 진학했다고 전해지나 세계에 자랑할 만한 위대한 의사가 되었다. 성산이나 슈바이처의 꿈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한 사명의식을 키우는 곳이라면 좋을 텐데, 이미 의대는 사교육을 주제로 한 드라마에 딱 맞는 배경이자 욕망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의사가 되겠다는 드라마의 설정은 그 직업이 인술(仁術)의 자리를 떠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사실 반복 학습이나 암기력으로 높인 수능점수가 훌륭한 의사의 배출로 이어져야 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유는 없다. 특히 인공지능을 비롯한 수많은 기술이 도입될 미래에는 암기력보다는 반성적 사고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의사의 중요한 자질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수업과 국가고시를 거부하는 의대생들이 제시한 논거, 즉 정부의 제안에 따르면 자신들보다 멍청한 이들이 의사가 되어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는 주장은 무지의 소산이다. 그걸 빼고 나면 사리에 맞지 않는 공정의 요구와 특권주의, 그리고 남들의 약점을 자신의 무기로 삼는 집단 이기주의가 남는다.

정부가 제안한 정책이 훌륭했던 것이 아니다. 엄중한 시기에 충분한 숙고와 논의 없이 큰 의제를 던지고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갈등을 해소할 준비도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 후에 “원점에서 모든 논의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결론에 이른 무능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정부의 무능이 이번에 의사와 의대생이 보인 여러 행태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자기 밥그릇 챙기기는 아니라면서도 의사의 수를 늘리려면 자신들의 허락을 받으라는 식의 태도에 여론은 싸늘해졌다. 예상되는 손해에 반발하는 것은 이해하더라도 그 모든 과정에서 왜곡된 특권의식의 냄새를 풍기니 싫어하는 것인데, 정작 본인들은 자기 냄새를 맡지 못한다. 도대체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쩌다 이들은, 자신이 합격한 것은 어떤 천재가 시험날 배탈이 났기 때문일 수 있다는 사실 정도도 생각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었을까?

그 원인은 의료계의 풍토다. 의학 교육과 함께 이들은 스스로 예외적 존재라는 특권 의식을 대물림했다. 최근 ‘의료계 선배’들이 국가고시를 거부한 후배들을 구제해 달라며 발표한 대국민 호소문이 그 증거다. 이들은 “의대생과 전문의들의 주장은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면서 “이들도 대한민국의 다른 젊은이들처럼 공정에 민감”하고 “의사 수 증원이나 공공의대 설립 등의 정책을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 없이 추진하려 했던 것은 그들의 미래를 암울케 하는 반칙으로 봤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선배들은 후배들의 그런 상황 판단이 맞는지, 그리고 본인이 거부한 국가 공인 시험을 다시 치를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한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러면서 의사를 뽑지 않으면 의료수급에 문제가 생기는 점을 강조하는데, 국민 건강을 걱정하는 것인지 협박을 하는 것인지 헛갈린다. 이들 역시 후배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려진 자신들의 특권의식을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그 특권 교육이 상당히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이 가장 슬프다. 전근대적인 서열문화가 작용하겠으나, 정당성과 명분을 찾기 힘든 집단행동에 반대하는 내부의 용기 있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소수일망정 밥그릇 싸움에서 거리를 두는 양심이나 명분 없이는 함부로 몸을 움직이지 않는 기개를 기대한 것은 무리였던가. 그런 기대야 접더라도 여전히 나는, 자신의 수능점수를 그렇게나 자랑스러워하는 멍청한 의사보다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이 무슨 뜻이며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이해하는 똑똑한 의사의 진료를 받고 싶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