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작하겠지만 취하고 나면 먹어치우는 게 상책이다

왁자한 시장 좌판에 발가벗고 나앉은 아라한(阿羅漢), 제 몸 갈라 먹을
중생 앞에서도 몸가짐 초연하시다

떼구름처럼 엉겼던 잡념일랑 모판에 눌러 짜서 삼베 천으로 걸러냈다

좌우, 어느 쪽 색깔이나 사상에 기울어지지 않는 맛으로 무엇을 도모하
지 않는다

두부의 ‘부(腐)’는 썩었다는 뜻이 아니고 뇌수(腦髓)처럼 연하고 물렁물
렁하다는 전갈이니

보시라! 네모반듯하게 각이 졌지만 안과 밖 한결같이 순한 생각만 한다

삶의 비린내 진동하는 틈에서도 제가 건너온 불보다 더 뜨겁게 칼 디밀
고 들어올 순명(順命)의 시간을 초연히 기다리고 있는 오늘의 두부,

어제의 뼈저린 후회나 내일의 걱정으로 콩새만한 생각에 갇힌 당신께
기원전부터 전해오는 진국의 경전 한 권 올려드립니다

시원하게 끓여 드시고 시냇가 징검돌인 듯 오늘을 건너세요


<감상> ‘두부’라고 발음하면 두 개의 입술이 한 곳으로 모아진다. 두부는 제 몸이 갈라지더라도 정(淨)한 생각으로 잡념에 빠지지 않고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다. 두부만큼 비정치적이고, 한 빛깔로 물렁물렁한 사고를 지닌 녀석이 있을까. 정치적으로 잔머리를 굴리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아, 부디 두부를 먹고 순한 생각을 한번 해보자. 바늘도 들어가지 못할 마음가짐으로 남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람들아, 한 번이라도 틈을 내주어 손해를 감수한 적이 있나. 그렇지 않다면 두부의 경전을 낭독해 보라. 그 경전을 낭송한 공덕으로 저승의 징검돌까지 잘 건널 수 있을 것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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