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유네스코는 1992년부터 세계기록유산을 선정했다. 인류 공동의 소유물로서 미래 세대에 전수되도록 보호한다는 취지다. 그간 ‘안네의 일기’를 비롯한 수많은 기록물이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재로 정해졌다.

한국은 총 16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 중이다. 아시아 1위이고, 세계 4위에 해당하는 등재 건수. 특히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일성록 같은 거질의 역사 문헌이 포함됐다. 국왕과 신하 사이의 국정에 관한 대화와 시대 상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우리들 선조는 기록의 가치를 소중히 여겼다.

이번 칼럼 제목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패러디하였다. 유력한 여행가와 비교한 어쭙잖은 만용이나, 삼십 년 전의 울릉도 탐방기도 나름 의미가 있으리라. 누군가 추억을 일깨우고 참고가 되지 않을까 여긴다.

나의 기행문 첫 구절은 ‘3무 5다’로 유명한 신비의 섬이라 묘사됐다. 현재 울릉군 홈페이지도 똑같은 표현으로 홍보한다. 세월을 건너뛴 소개인 듯하다. 3무는 도둑·공해·뱀이고, 5다는 물·미인·돌·바람·향나무를 가리킨다.

당시 포항 여객선 터미널에서 ‘씨 플라워’ 호에 탑승했다. 정원 345명 쾌속선으로 217킬로미터 뱃길을 두 시간 반이 걸린다는 안내 방송. 힘찬 뱃고동 소리와 함께 영일만을 출발했다. 근데 동해 바다는 파고가 높아 고속 항해가 어려웠다. 결국 다섯 시간 넘게 걸려 도동항에 당도했다.

연중 서너 차례 수확하는 취나물은 울릉도 주요 농산물이다. 이를 늘어놓고 말리는 도로변 풍경이 흔했다. 승용차가 폭증한 요즘도 그런지 궁금하다. 당시 60킬로그램 포대 가격이 24만 원으로 거래된 고소득 작물.

포구 오징어 위판장 광경도 지켜보았다. 밤새 조업을 마친 채낚기 어선이 항구로 돌아오면 열 명 안팎 중매인이 경매에 참여한다. 그들은 이를 중간 가공업자에게 넘긴다. 그러면 오징어 배를 갈라 대나무에 끼우는 아낙네들 손길을 거쳐 덕장에서 건조돼 건어물로 탄생된다. 오징어 시세는 당일의 풍흉에 달렸다. 1992년 9월 22일 낙찰가는 스물 마리 한 축에 1만1천 원 내외. 청정 해역인 태하산 오징어는 약간 비싸다고.

산속 고지대 곳곳에 교회가 보였다. 14가구가 산재한 서달 마을에도 깔끔한 십자가를 내건 성소가 있었다. 개척자 정신이 아니고는 힘든 참사랑 전파다. 종교는 없으나 신심은 지녔기에 잠깐 들러 기도를 하였다.

아침 산책길 울릉중 태하분교 학생과 얘기를 나눴다. 전교생 43명. 본토에 나가는 꿈을 말했다. 그냥 좋을 것 같다는 소망이라고. 울릉도는 물가가 비쌌다. 여인숙 상호인 일박 요금이 1만8천원, 이틀 머문 도동의 울릉 호텔은 2만5천원. 참고로 포항의 갑 등급 여관은 1만3천 원이었다.

근자 EBS 프로 한국기행에 울릉도 북동쪽 죽도가 방영됐다. 젊은 부부가 아기와 함께 거주한다. 내가 탐방할 그때는 세 가구가 살았다. 아마 그중의 한 자녀인 듯하다. 샘물이 없는 도서로 빗물받이 시설이 낯익었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호박엿으로 유명한 울릉도엔 호박밭이 많진 않았다. 수매가는 킬로그램 당 700원. 육지 손님들 최고 대접은 생선회가 아닌 약소 혹은 약염소이다. 이들은 방목 사육한 가축으로 자생 약초를 뜯어먹어 몸보신에 그만이라고. 때론 무리를 이탈한 주인 잃은 야생 염소는 사냥도 한다고. 실제로 신선한 육회와 삶은 수육은 고기 맛이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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