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 칼럼니스트
김동완 칼럼니스트

엊그저께 찬 이슬 내리는 한로(寒露)가 지났다. 한로의 ‘이슬 로(露)’자는 ‘길 로(路)’ 자가 핵심 의미체이다. 길은 다녀서 만들어지고 길과 길이 아닌 것의 경계를 긋는 선이다. 온기와 냉기의 경계에서 이슬이 맺힌다. 한로는 곧 ‘추위가 오니 더위는 간다(한래서왕·寒來署往)’는 가을 선언이다.

이때부터 가을의 얼굴이 바뀐다. 날씨에 칼 냄새가 난다. 가을 기운이 초목을 말라죽게 하는 ‘숙살지기(肅殺之氣)’가 올라온다. 제비, 백로 같은 여름새가 떠나가고 기러기, 두루미 등 겨울새가 강과 들판에 날아와 주인행세를 한다. 풀벌레가 한 해의 무대 뒤로 사라지는 때이기도 하다.

가을은 한 해의 축제이기도 하다. 들판에는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 같은 가을 정서를 듬뿍 담은 들국화가 지천으로 피어난다. 국화는 서리 맞고도 꼿꼿해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부른다. 황금 물결 들판에는 수확이 한창이다. 산에는 단풍나무, 복자기, 개옻나무, 붉나무, 마가목들이 울긋불긋 꽃대궐을 이뤄 축제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제 곧 서리 내리는 ‘상강(霜降)’이다. 이슬이 얼어 서리가 된다. ‘서리 상(霜)’자의 독음에는 ‘잃을 상(喪)’자의 의미도 있다.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초목이 시들어 죽는다는 뜻이다. ‘여씨춘추’, ‘효행람편’에 “가을 서리가 이미 내리니 뭇 수풀들이 모두 시드네”라고 했다. 초목이 시들어 죽으면서 해충도 죽이는 살균 효과도 있다. 식물의 새로운 생명을 보존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가을 서리에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12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1단계로 완화했다. 지난 2주 동안 코로나19 국내 발생 확진자 수가 하루 평균 60명 미만으로 줄었고, 감염생산지수도 1 이하로 떨어졌다. 상강, 초목이 시들어 가는 시기에 코로나 19도 함께 죽었으면 좋겠다. 추상같은 서릿발로 괴질을 내쳤으면 좋겠다. 그래서 상강이 가을 축제의 대미를 장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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