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부귀와 강성함도 시간이 지나면 바뀐다. 항성인 태양과 8개의 행성과 약 160개의 위성 수많은 소행성 혜성 유성과 운석 옅은 구름을 이루고 있는 항성 간 물질 등으로 이루어진 태양계도 끊임없이 운동을 한다. 행성 중 하나인 지구는 공전과 자전을 한다. 거기에는 도지동(道之動) 오르면 내려가고 내려가면 다시 오르고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

그게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한다. 하루해가 떴다가 지듯 겨울이 있으면 여름이 있고 새싹이 돋는 봄이 오면 잎이 지는 가을이 오고 다시 겨울로 돌아오듯 길고 짧은 차이만 있을 뿐 다시 제자리로 돌 온다.

인간의 삶도 다를 바 없다. 태어나면 죽고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날이 있고 나쁜 날이 있으면 다시 좋은 날로 돌아온다. 그래서 행운과 불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고 간다. 다만 불행은 꽹과리치고 요란스럽게 오지만 행운은 죽은 듯이 조용히 온다. 그래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자칫 행운이 오는 것을 모르고 지나쳐 버린다. 그리고 다시 불행이 오면 마치 불행만 나쁜 일만 계속된 것 같다.

도지동 그 법칙은 예외가 없다. 각별히 관심을 둬야 할 건 부귀·강성함 권력 쥐고 누리는 것 영원할 듯싶지만 잠시 잠깐 머물다 구멍이 숭굴숭굴 뚫린 삼배 바지 모시 적삼에 바람 스치듯 사라져 버린다. 다만 그것 관리하기에 따라 기간이 길기도 짧기도 할 뿐이다.

속된 말로 있을 때 잘해 보라는 말이 있다. 그 말 또한 그 바탕에 도지동이 깔려 있다. 언젠가 달라진다. 그래서 달라지기 전에 좋을 때 부귀영화 누릴 때 잘하라는 말이다.

고대 중국에 맹상군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맹상군이 고향 사람들에게 돈을 많이 빌려주고 농사를 지어 가을에 수확을 하면 빌려준 돈을 받는다. 한번은 맹상군이 풍훤을 자기 고향 설 지방에 가서 빚을 받아 오라고 했다. “빚을 받아 어떻게 할까요?” 풍훤이 물었다. 맹상군이 “집에 없는 것을 사오라”. 맹상군에겐 받아 오라는 빚 그 돈 없어도 괜찮지만 흉년에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한 빚을 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부담이 적지 않을 것 같아 풍훤이 설 지방으로 가면서 빚 문서를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설 지방을 한번 둘러보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빈손으로 돌아온 풍훤을 보고 맹상군이 어떻게 된 것이냐 묻자 풍훤이 “빚을 모두 받아 분부대로 이걸 사 왔습니다.”

맹상군이 “그게 무엇인가?” “예 바로 이것입니다.” 하고 의(義)를 말했다. “재물 대신 의로서 민심을 얻게 됐으니 군주에게는 재물보다 더 큰 이득을 얻은 게 아닌가요” 그렇게 말했다. 맹상군은 화가 났다.

그 얼마 뒤 맹상군이 부패에 연류 재상직위를 박탈당하고 가진 재산 모두 빼앗기고 오고 갈데없이 됐다. 하는 수 없어 빈손으로 고향 설지역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맹상군이 관직에 있는 동안 권력만 믿고 고향 사람들에게 민심을 잃는 짓을 너무 많이 하여 고향으로 가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됐다. 그렇다고 마땅히 갈 곳이 없으니 어쩔 수 없으니 돌팔매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고향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고향으로 가자 사람들이 모두 나와 대환영을 하며 서로 모시겠다고 한다. 그때 맹상군이 감격 눈물을 흘렸다. 경위를 묻자 흉년이 들었을 때 소작농들에게 소작료를 탕감해 주어 그들이 어려운 시기를 잘 보낼 수 있도록 해 주셨던 은혜를 생각하면 이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다며 편히 모시도록 하겠으니 마음 편히 지내시라 했다. 맹상군이 그때야 풍훤이 사 놓았다는 ‘의’가 무엇이었던가를 알게 됐으며 돈과 권력만 알던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어리석게 살았는가를 풍훤을 통해 깨우치게 됐으며 풍훤이 사람 팔자 알 수 없는 것은 물론 의를 보여줬다.

공직자들 특히 위정자들 별것도 아닌 권력의 위치에서 똥오줌 가리지 못하고 행동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 있는데 그 속내 들여다보면 정말 한심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다. 순간에 그칠 권력만 믿고 어리석게 언행 함부로 하는 그들 정신 차리기 바란다. 무엇보다 솔직하고 정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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