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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광장] 크리스찬 디올과 시리우스 디올
[아침광장] 크리스찬 디올과 시리우스 디올
  • 하윤 케인 변호사
  • 승인 2020년 10월 15일 16시 21분
  • 지면게재일 2020년 10월 16일 금요일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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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케인 변호사 (contact@hklaw.us https://hklaw.us)
하윤 케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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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으로 세계적으로 패션계가 약 1조가량의 손실을 입은 가운데 상위 브랜드는 2020년 매출이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브랜드 파이넌스’는 디올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가치있는 브랜드 9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루이비통, 까르띠에, 샤넬, 에르메스까지 10위권에 올라간 프랑스 브랜드가 다섯개나 된다.

디올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를 비롯하여 세계를 사로잡은 브랜드다. 설립자 크리스찬 디올은 여느 디자이너와는 다른 독특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크리스찬 디올은 1905년 부유한 사업가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패션 센스를 보고 자라고 그와 정원 가꾸기 등을 하며 예술에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외교관이 되기 위해 에콜 리브르 데 시앙스 폴리테크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크리스찬 디올은 친구와 함께 작은 갤러리를 열고 파블로 피카소, 장 콕토 등의 그림을 선보였다. 1928년 문을 연 이 화랑은 1931년의 경제 공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1930년대는 크리스찬 디올에게 암흑의 시기였다. 공황에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하고 어머니와 형이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 유복한 삶을 살던 디올은 친구에게 패션 드로잉을 배워 장 당 10센트에 패션 일러스트를 팔며 근근이 생계를 꾸려나간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그는 1941년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다시 패션계에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점점 디자이너로 주목을 받는다. 그의 작품은 꽃에서 영감 받은 곡선을 살린 실루엣, 풍성한 스커트 등 전쟁의 아픔이 전혀 보이지 않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성복이었다. 그는 전후 패션 사업의 선구자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름을 회사 이름이나 브랜드 이름으로 잘 쓰지 않지만 서양에서는 이름을 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유명한 사람이나 브랜드와 동명이인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호주에서는 ‘시리우스 디올(Sirious Dior)’이란 이름을 가진 사진 작가가 2014년 자신의 이름인 ‘시리우스 디올’과 ‘디올 파인 아트 (Dior Fine Art)’로 상표 등록을 신청했다. 신청서에 작성한 서비스와 제품은 전시회, 쇼, 박물관, 갤러리 등에서의 예술품 전시, 인쇄 제품의 발행, 출판 서비스, 출판 컨설팅 서비스, 책 출판, 전자 인쇄물 발간, 사진에 관한 잡지 출판, 사진 예술 출판에 관한 정보 제공 서비스 및 인쇄물이었다.

디올은 즉각 모든 상표 신청서에 문제 제기를 했다. 디올이 이미 패션 및 예술 분야에 저명한 상표이기 때문에 ‘시리우스 디올’의 상표가 등록되면 자사 브랜드 가치가 훼손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경우 대개 작은 브랜드가 소송을 감당할 여력이 없고, 또 이길 확률도 높지 않기 때문에 합의로 사건을 마무리한다. 이 사건도 조용한 것으로 보아 시리우스 디올과 법원 밖에서 상표를 포기하기로 의견 조율을 한 듯하다.

한국에서는 디올이란 이름을 사용해도 괜찮을까? 상표법의 어느 국가에서나 소비자의 혼동을 방지하고 브랜드 소유자에게 이름에 대한 고유 권리를 지켜준다. 따라서 유명인 이름을 등록한다면 처음엔 문제가 없어 보일지라도 이후 상표 취소 소송 등 시한폭탄을 안고 사업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디올은 세계에서 브랜드 파워 9위를 자랑하고 있는 기업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나 ‘디올’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상표등록을 한다면 디올과 법적으로 부딪힐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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