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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설] 포항 흥해 이팝나무
[삼촌설] 포항 흥해 이팝나무
  • 이동욱 논설주간
  • 승인 2020년 10월 15일 16시 53분
  • 지면게재일 2020년 10월 16일 금요일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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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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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문화적 상징성을 띤다. 봄에 안동 도산서원 뜰에 피는 백매(白梅)는 평생 100여 편의 매화시를 짓고, 매화를 매형(梅兄)이라 높여 부르기까지 했던 퇴계 이황의 시정과 어울려 특별한 향기를 뿜는다. 서릿발을 이긴다는 오상고절(傲霜孤節) 가을 국화는 진나라 시인 도연명이 향기를 더했다. ‘귀거래사’를 짓고 속세를 떠나 여러 편의 국화와 관련한 시를 남겼다. 그래서 은자(隱者)의 대표 도연명은 ‘영원한 국화의 주인’이라 부른다.

이렇게 꽃에 대한 감성은 사람이나 세월에 따라 다르고, 지역에 따라 감수성이 달라진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입하(立夏) 무렵에 피는 이팝나무꽃도 서양사람이 보는 것과 우리 선조들이 본 느낌은 천양지차다.

이팝나무의 학명은 ‘치오난투스 레투사(Chionanthus retusa)’다. 속명 ‘치오난투스’는 ‘흰 눈’이라는 뜻의 ‘치온(Chion)’과 ‘꽃’을 뜻하는 ‘안토스(Anthos)’의 합성어다. 서양 사람들은 이팝꽃을 ‘하얀 눈꽃’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하지만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마셨다는 지독한 보릿고개를 넘어 온 우리 조상들의 눈에는 이팝꽃이 ‘흰 눈’이 아니라 ‘흰 쌀밥’으로 보였다. 쌀은 이미 떨어진 지 오래고, 보리 수확은 아직 이른 시기에 맞춰 피어나는 이팝꽃은 멀리서 보면 흰 쌀밥, 이밥을 사발에 고봉으로 퍼 놓은 것처럼 소담스럽게 보였으리라. 꽃이 피었다가 땅바닥에 똑 똑 떨어져 질 때도 이팝꽃잎은 흰 쌀알처럼 보인다.

선조들의 주림의 상징인 이팝나무가 포항 흥해향교 주변에 아름드리 고목이 돼 봄이면 온통 하얗게 이밥을 짓는다. 향교 주변에 50여 그루의 이팝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문화와 민속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문화재청이 이 ‘포항 흥해향교 이팝나무 군락’의 가치를 인정해 천연기념물 지정 절차를 끝내고 다음 달 중에 확정할 계획이다. 내년 5월에는 꽃이 더 희고 곱게 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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