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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광장] 표절의 미학
[아침광장] 표절의 미학
  • 양선규 대규교대 교수
  • 승인 2020년 10월 20일 16시 17분
  • 지면게재일 2020년 10월 21일 수요일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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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규 대규교대 교수
양선규 대규교대 교수

작가 신경숙 이름을 들어본 지가 좀 오래되었습니다. 표절 시비가 있고부터인 것 같습니다. 작가에게 표절이란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신 작가가 독자들에게 받았던 사랑에 비례해서 표절의 배신감도 그만큼 컸다는 말이겠습니다. 표절 시비의 도화선이 되었던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을 한 번 읽어 보았습니다. 미시마의 작품으로는 태작(怠作)에 해당 될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군국주의 찬양, 천황숭배 등 파시즘의 이념을 선전하기 위한 관념 편향의 단편이었습니다. 비슷하게 실제 있었던 사건을 소재로 한 미시마의 대표작 『금각사』와는 달리 자신의 생생한 생애 체험이 전혀 녹아 들어있지 않은 작품입니다. 신 작가가 참조한 부분은 ‘관념의 파티’인 이 소설이 관념 희석용으로(최소한의 소설적 요건을 구비하기 위해서) 가미하고 있는 애정 묘사 장면입니다. 신혼의 젊은 남녀가 육체의 열락을 알아가는 대목인데 이 역시 상투적 관념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워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신경숙의 「전설」)

미시마의 틀에 박힌 상투적 표현에다(‘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유려한 관념 유희를 덧붙인(‘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신경숙의 베껴 쓰기가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차라리, 여자의 몸을 원하는 욕정에 넘치는 젊은 남자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제대로 묘사하는 게 좋았을 겁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여자의 육체적 반응도 세밀하게 그려내면 더 좋고요.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공간에 대한 자세한 묘사도 있었으면 금상첨화였을 겁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랑을 나누는 ‘젊은 날의 열정’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도 소설의 직무 중의 하나입니다.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에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와 같은 상투적이고 모순적인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았습니다. 밤낮 안 가리고, 장소 불문하고, 육체의 향연에 몰두하는 이들을 그리면서 ‘그들의 밤’이라는 상투적 환유를 쓴다는 것은 소설가로서 일종의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작가가 다른 작가의 정수(精髓)를 훔쳤다면 욕을 먹어도 좀 덜 억울할 것입니다. 신 작가의 경우는 누가 봐도 어설픈 태작의 한 장면을 공연히 참조해서 화를 자초한 느낌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시마나 신 작가나 비슷한 약점을 지닌 작가라는 것을 이 사건은 보여줍니다. 인생은 관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모든 소설의 의무입니다. 그렇지 못한 소설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든 ‘표절의 미학’ 속에서 헤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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