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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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술자리에서 논란거리가 생기면 신문사 편집국으로 전화해서 무엇이 옳은지를 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기자들이 시빗거리에 대해 판정을 내려주면 옳은 주장을 한 사람은 마주 앉은 이에게 “봐라, 맞지” 손가락질까지 하며 의기양양해 했다.

그보다 앞서서는 ‘복덕방(福德房)’이 있었다. 복덕방은 부동산 계약관계만 간여하는 것이 아니라 논의 물대기나 이웃 간의 말싸움 등 마을의 분쟁을 중재하는 재판소(?)였다. 또한 군대 간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대필이나 축문, 택일은 물론 인생상담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해 주는 종합민원센터 역할도 했다. 이 때문에 복덕방 주인장은 덕망과 신망이 두텁고 글깨나 아는 사람이었다.

원래 복(福)은 제사 때 신명에게 바치는 술과 음식을 뜻한다. 제사 끝에 ‘음복(飮福)’하듯이 온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나눠 먹음으로써 신명의 복을 입을 수 있다고 여겨 제주가 그 복을 나눠 주던 곳이 복덕방이었다. 이런 복덕방이 1984년 4월부터 허가제로 바뀌면서 ‘공인중개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때부터 복덕방의 정신적·인간적인 중개기능은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물질적 중개기능만 남았다.

이런 공인중개사 시험에 올해는 사상 최다 34만3076명이 몰렸다. 서울의 10억짜리 아파트 매매를 중개하면 주택가액의 0.9%를 중개수수료로 받는데 매도자와 매수자 모두에게 받으니 1800만 원이나 된다. 아파트 한 채 중개하는 복비(福費)가 웬만한 직장인 월급보다 많다. 돈 되는 복비에 솔깃해서 응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려운 취업난이 이들을 줄 서게 했다.

하지만 지난 9월 정부가 내년 예산안과 함께 발표한 19개 분야 블록체인 활용 실증 항목에 ‘중개인 없는 부동산 거래’가 들어있다. 이제 계약서에 붉은 도장을 꾹꾹 눌러 찍으며 집을 사고파는 풍경도 사라지게 될 듯 하다. 이런 마당에 공인중개사 시험 응시자의 장사진 소식은 못내 씁쓸한 기분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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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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