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게으른 신(神)의 뜰에 봄은 더디 오고 서너 마리 다소곳
이 햇볕 속에 흩어졌다 꽃도곤 벼슬이 붉은 닭 천상의 양
식을 쪼는

―비, 오월

영상 팔 · 구도쯤의 오월도 아침나절 이맛전을 스쳐가
는 짧은 비의 탄주를 나무는 다 들은 눈치다 사운거리는
잎들을 보면

―풍경

처마끝을 들어 올린 춤도 이제 지쳤구나 숱한 천둥 번
개 스러져 간 골짜구니 쇳소리 떨어진 족족 산구절초 피
었다



<감상> 닭이 먼저 봄 오는 소리를 듣고 천상의 양식인 햇살을 쫀다. 마당귀까지 햇살이 흩어지고 따듯해져 온다. 나무가 비 오는 소리를 듣고 먼저 젖는다. 잎들이 미리 음표를 준비해 두었으니 비의 탄주를 다 들을 수 있겠다. 초록이 지쳐 단풍 들듯 저 푸른 몸짓들도 가을에는 지칠 것이다. 당연히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風磬)도 지치는 모양이다. 그 풍경 소리를 받아먹고 가을날 산구절초는 절로 피어나는 것이다. 지치는 것은 스러져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낳기 위해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지치지도 않고 꽉 채우려고 덤벼드는 것인가.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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