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죽어 반쯤 묻혀 있었다
누군가 지나칠 수 없어 급히
반쯤이라도 덮어줬을 것이다
또 누군가 지나칠 수 없이
반쯤의 무덤을 덮으리란 걸
알았을 것이다
누가 먼저 이 무덤을 마저
만들자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경황없는 묘주처럼 막대기로 흙을 파서
손바닥에 모아 옮겼다
진달래가 산바람에 흔들려
잠깐 조문을 하는 듯했고
초봄이지만 추워서 갈잎을 그러모아 덮고
비문도 없는 편편한 돌을
마지막으로 얹었다
제례는 언제나 예기치 않은 순간에 왔듯
또 신원불상의 무덤을 만든다
만들고 서럽지 않게 떠난다
사막에서는 낙타의 사체를 이정표로 썼다는데
죽음만이 길을 살렸다는데
뼈도 작은 이 목숨이 무슨 표식이 되리
눈물도 통곡도 상주도 없는 살아서
만난 적 없는 이 겁먹은 눈망울을 깨우리


<감상> 누군가 고양이 주인(猫主)도, 묘의 주인(墓主)도 아니면서 반쯤 묻힌 무덤을 장례 치르듯 봉분을 쌓는다. 그것도 시인은 18행씩이나 할애하면서 그 과정을 장황하게 늘여 놓는다. 어디 고양이 무덤뿐이겠는가. 인간의 무덤도 언젠가는 반쯤 드러날 것이고 산 능선의 일부가 되기에 죽음 앞에선 엄숙해진다. 사막의 길은 낙타 중에서도 새끼의 사체를 묻어 이정표로 삼아 생긴 길이다. 하지만 인간이나 고양이나 어찌 무덤이 살아있는 자들의 표식이 되겠는가. 살아 있을 적에 죽음 이후의 내 무덤을 상상해 보자. 나는 누구의 표식이라도 될 수 있는지 눈망울을 크게 뜨고 보자. <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