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언니 담배 꽃 본적 있어요? 너무 예뻐요.”

휴대폰 속의 사진을 보여주며 s가 묻는다. 그 속에는 부케를 연상시키는 한 다발의 소보록한 분홍색 꽃이 화면가득 피어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꽃이다. 행운과 축복의 상징인 부케로는 결코 쓰일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아는 내 몸이 부르르 떨린다. 내가 휘두른 무딘 낫 끝에서도 맥없이 스러지던 단아한 꽃송이가 눈앞을 스쳐갔기 때문이다.

“꽃이야 다 이쁘지.”

심드렁한 내 대답에 무안한지 그녀는 딴 것으로 화재를 돌렸지만 나는 이미 한 쪽으로 밀쳐 두었던 과거를 내 앞에 당겨 놓았다.

내가 갓 새댁으로 불리던 때 시어머니와 겨끔내기로 꺾어버려야 했던 꽃이었다. 이제 막 벙글기 시작한 꽃자루를 사방으로 오종종 매달고 있는 굵직한 꽃 대궁을 사정없이 쳐 밭고랑에 내 던졌다. 돈이 되는 담배 잎을 좀 더 살찌우고 키우기 위해 꽃으로 가는 영양을 차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연분홍 봉오리가 애처로웠다. 툭 분질러진 꽃 대궁에선 허연 진액이 흘렀다. 순교했던 이차돈의 목을 칠 때 흰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던가. 그의 영혼이 담배 꽃에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의미 없는 일에다 같잖은 의미를 부여해가며 스멀스멀 치받는 불길한 생각 때문에 두려움이 일었다.

“빨리 일 안하고 뭐하고 있노.”

행여 내가 그런 감상에 젖어 설핀 꽃숭어리를 끌어다 코끝에라도 대는 날이면 어김없는 어머니의 꾸중이 독한 담뱃진처럼 진득하게 뒤따라와 들러붙었다.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여름 밭고랑에서 축 늘어지던 꽃처럼 나는 말 한마디 못하고 시들어 갔다. 정말이지 담뱃진으로 엉겁이 되던 몇 해는 내 생애서 흔적 없이 사라졌으면 싶었다.

어쩌겠는가. 돈이라고는 한 푼 나올 곳 없는, 사방이 산으로 막힌 산골에서 담배농사로 내 남편이 공부를 했다는데야 도리가 없었다. 대학 새내기인 시동생과 겨우 신입 딱지를 땐 시동생, 고등학생인 시누이의 등록금과 생활비는 또 어쩔 것인가. 너풀거리는 담배 잎이 만 원권 푸른 지폐 같이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꽃이라고 다 같은 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 연분홍 아릿한 꽃이라고 화병에 꽂혀 안방마님의 사랑까지는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았다. 풀꽃이라도 좋으니 그저 꽃을 활짝 피워보는 것만이 소원이었다. 그것이 내가 심약한 새댁으로 허송세월을 할 수 없는 이유였다. 비슷한 또래의 이웃 형님이 부뚜막의 손도 빌린다는 일철에 빨간 비로드 홈드레스를 입고 살랑대며 골목길을 누비고 다녀도 눈을 감았다. 같은 날 결혼한 또 다른 새댁이 혼수를 바리바리 싸 왔더라는 어머니의 이야기에도 귀를 닫았다. 내가 피울 꽃은 그런 것이 될 수 없었다.

쌀쌀한 이른 봄에 모종을 심고 떡잎이 손바닥만 해지면 해종일 맨손으로 잡풀을 뽑아냈다. 내 손이 사포처럼 거칠어지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한여름 뙤약볕아래서 듣는 시어머니의 애꿎은 친정 타박에는 숨이 턱턱 막혔다. 쪼그려 앉아 손으로 담배 순을 비집고 돋은 풀을 뽑고 해진 비닐하우스 구멍을 내 심장에 뚫린 것인 양 흙으로 메꾸었다.

담배 키가 나와 비슷해지고 대궁이 목을 쭉 뽑아 꽃망울이 몽글몽글 매달리면 꺾어내야만 했다. 꽃을 피우고 씨를 여물게 하는 종족보존은 어떤 동식물이나 본능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날은 여름해가 더 길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한여름부터 밭고랑 사이를 무릎걸음으로 기어 다니며 담배 잎을 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과 담뱃진이 범벅이 되어 온몸에 거미줄을 휘감은 듯 불쾌했다. 시부모님과 내가 따 나르는 팔 길이만한 잎은 집에 계신 할아버지 손에서 염장한 굴비두름처럼 차곡차곡 엮였다.

땅거미가 내릴 때까지 담배 잎을 따고 밤이 이슥하도록 엮어 토굴에다 층층이 걸었다. 눅눅한 기운이 감돌던 그곳은 태곳적 동굴 속을 연상시켰다. 그러고 나면 문을 잠그고 장작불을 당겨 사나흘 말리는 일이 남았다. 불기운에 담배 잎이 누렇게 마르는 동안에도 푸른 잎을 수확하고 엮는 일은 끝없이 반복되었다. 온 동네 토굴 굴뚝에서는 밤낮 담배를 말리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기로 말리는 기계시설이 나오기까지 가족들의 손이 일 년 내내 매달려도 부족했다. 끈끈하고 독한 담뱃진이 몇 겹의 팩을 두른듯해 씻고 자리에 누워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 하지만 자고나면 어느새 한 뼘씩 쑥쑥 커가는 잎만을 바라보기로 했다.

담배농사를 짓는 사이 두 번의 자연유산을 했다. 피기도 전에 꺾여버린 발그스름한 꽃봉오리들이었다. 내 몸에서 핏덩이들이 빠져 나가고 나면 명치끝으로는 느꺼움이 밀고 올라와 꺽꺽댔다. 그러고도 몸조리는 꿈도 못 꾸었다. 다음날이면 아무 일 없었던 듯 들에 나가야 했다.

스산한 초겨울 바람이 온 몸을 파고드는 날 나는 세 번째 수술대에 누웠다. 넉 달을 나와함께 인내했던 생명이었다. 의사는 습관성 유산이 되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며 꼼짝 하지 말고 누워만 있으라고 했다. 내 무지로 빛을 보지 못하고 떨어져 내린 목숨들이었다.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스스로를 지키려면 담배농사에서 손을 떼야 했다.

“뭐, 그게 힘든 일이라고. 별나기는. 아들 둘 못 낳으면 쫓겨나야지 뭐.”

앞산의 나무들이 서른 예닐곱 번이나 옷을 갈아입는 지금껏 내 귓가에서 파문처럼 맴돌고 있는 시어머니의 말 때문이었다. 쫓겨나지 않으려, 대 이을 아들을 얻기 위해서 눈을 감고 못 본 척 못들은 척 거리를 두었다.

담배 꽃은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목련처럼 우아하지도 않지만 풀꽃처럼 납작 엎드리지도 못하는 꽃이었다. 매혹적인 향을 내 뿜지도 못했고 가시로 맹렬하게 저항한 번 하지 않았다. 하늘 향해 무언가를 외치고자 손나팔 뻗으려 애를 썼고, 연분홍 입술을 달싹이며 기도의 주문을 쉼 없이 올리던 꽃이었다. 그의 힘없는 생이 저릿해 나도 덩달아 간절한 비손이 되어야 했다. 어떻게든 고난을 이겨 내야만 했다.

담배 맛이 쓰고도 아린 이유를 알기에는 너무 이른 탓이었을까. 거기에 물들지 않으리라 속울음 삼키며 나를 다독여야 했다. 자라나는 튼실한 잎을 위해 활짝 피어보지 못한 담배 꽃은 더 이상 되지 않기로 했다.

담배 꽃의 꽃말이 ‘그대 있어 외롭지 않네. 고난을 이겨내다.’ 라는 것임을 최근에야 알았다. 고난을 이겨내고 목숨을 지켜 연분홍 꽃을 탐스럽게 피운 담배 꽃이 휴대폰 속에서 방그레 웃고 있다. 이제는 나도 활짝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허숙영(여·62)창원시 마산합포구
*2002년 <한국수필> 등단.
*작품집: 단디 해라이. 비린(比隣)구멍
*제1회 경남 올해의 젊은 작가상. 경남문학 우수 작품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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