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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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울은 겉으로는 번듯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구로공단이나 청계천 등에는 시골에서 상경한 어린 노동자들을 고용한 봉제공장과 철공소 등 열악한 환경의 수공업 공장들이 많았다. 지금은 복원돼 맑은 물이 흐르고 있지만 시멘트로 덮여 있던 청계천 평화시장, 통일상가에는 제조업체가 즐비했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 지켜지지 않는 ‘근로기준법 화형식’이 거행됐다. 경찰의 저지로 시위가 무산되려는 순간 한 청년이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노동자 전태일이다. 50년 전 전태일의 절규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대한민국은 ‘주 52시간’이니 ‘워라벨(Work-Life Balance)’이니 하지만 법 테두리 밖 장시간 노동이 여전하고, 산업재해 사망률 세계 1위 국가란 오명을 쓰고 있다.

2016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19살 청년 노동자가 홀로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다가 열차에 치여 숨졌다.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시간이 부족했던 청년의 가방엔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2018년 12월, 24살 김용균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밑에 쌓인 석탄을 긁어모으다 벨트에 감겨 목숨을 잃었다. 언제 내려올지 모르는 작업 지시 때문에 그의 가방 속에서도 컵라면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에는 심야 배송 택배기사들이 이윤을 위해 사지로 내몰리며 잇따라 목숨을 잃고 있다.

이런 끔찍한 사건이 계속되고 있지만 노동현장에서는 여전히 ‘죽음의 외주화’가 계속되고, 산재 사고 은폐가 일상화 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전태일 열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훈장을 추서했다. 하지만 이런 온정주의 기념 이벤트로 ‘산재 사망 1위’ 오명을 벗을 수 없다. 정부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노동 현장에서 부르짖고 있는 “노동법 준수하라”는 절규에 귀 기울이고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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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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