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검은 돌에 새겨 우물에 던지지

물이 차오르는
우물 깊은 곳에는 죽은 자들이 가득하고

살아서 미처 남기지 못한 말들을
뒤늦게 전하듯이
검은 돌은 작아지지

아무도 없는 한밤중에는
어린 그림자가
사랑하는 이름을 흰 돌에 새겨 우물에 던지지

물을 긷는 우물 속에서 흰 돌이 빛나고

이름의 주인이 나타나면
안쪽에 차오른 말들이 입술 밖으로 흘러나오듯
흰 돌은 작아지지

사람들은 살아가지

검은 밤을 마시며
흰 낮을 마시며


<감상> 삶 자체가, 시(詩) 자체가 사랑과 죽음에 관한 노래가 아닌가. 죽은 사람의 이름을 검은 돌에 새겨 우물에 던지면 그 돌은 몇 만 년이 흘러 모래알이 될 터. 우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죽음을 껴안는 자궁과 같은 곳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흰 돌에 새겨도 마찬가지이다. 검은 색과 흰 색 사이는 중간 개념이 없는 모순관계에 놓여 있다. 곧 사랑과 죽음의 관계도 뚜렷한 구분 없이 하나의 개념으로 통일된다. 사람들은 사랑과 죽음이라는 바퀴 속에서, 검은 밤과 흰 낮이라는 시간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살아 있을 동안 사랑한다는 말이 입술 밖으로 넘쳐 나기를.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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