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자나무 잎이 무성합니다

꽃은 언제 폈다 졌을까요?
어떤 향기가 났을까요?
길을 걷다 언뜻
본 것도 같습니다

떨기마다 우거진 잎에는
먼지가 쌓여 있습니다
빛바랜 일상들이 줄기를 붙들고
축 처져 있습니다

언제부터 마음에
먼지가 쌓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걸음을 멈춰
지친 어깨의 먼지를 미리미리
털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오늘, 명자나무 잎이
유난히 반짝이며 맑게 웃는 것은
어제 비가 내렸기 때문입니다


<감상> 흰색, 분홍, 빨강이 조화를 이루며 피는 명자꽃을 봄날에 본 듯도 합니다. 이제 꽃과 향기를 버려두고 먼지로 덮인 잎을 봅니다. 우리의 일상도 좋은 날은 가고, 먼지 자욱한 나날이 다가옵니다. 지친 어깨에 쌓인 먼지를 털어주는 마음이 바로 사랑이 깃드는 출발점입니다. 어제 비가 내려 오늘 반짝이는 잎을 바라봅니다. 어깨를 다독여 주고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상대방의 먼지를 씻어주고, 내 마음에 찌든 때도 정화(淨化)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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