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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포럼] 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
[경북포럼] 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
  •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 승인 2020년 11월 29일 15시 59분
  • 지면게재일 2020년 11월 30일 월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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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인간은 삶의 이유를 물으면서 사는 유일한 존재다. 인간만이 삶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문제 삼고, 그에 대해 고민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에게만 진정한 환희가 있고 절망이 있는지도 모른다. 내 자신이 어떤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는가를 심각하게 물어보지만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

중국의 유명한 고승 조주라는 스님에게 “달마는 왜 서쪽에서 왔는가.”를 물었더니 “뜰 앞의 잣나무”라고 대답했단다. 정말 선문답이다. 뜰 앞의 잣나무가 거기 있으니까 있는 것이지 다른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다. 왜 거기 있는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누가 심었는지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대답이다. 달마가 인도에서 그냥 왔을 뿐인 것이다.

인간은 때로는 ‘왜’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 근본적인 질문인 것 같지만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없을 것 같다. 왜 사는가 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마음을 모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길인가 고민해 볼 일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훌륭한 선인들의 삶을 본보기로 삼을 수도 있다. 여러 삶의 모형을 융합하여 새로운 삶의 모델을 만들어 적용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인의 삶을 보고 들으면서 적어도 다른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삶은 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기는 사람과 지는 사람이 있다. 이기는 사람은 실수를 했을 때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지는 사람은 실수했을 때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핑계를 댄다. 이기는 사람은 아랫사람이나 어린 아이에게도 잘못이 있으면 사과한다. 지는 사람은 고개 숙이지 않는다. 자신의 일을 합리화시키려고 애를 쓴다. 이기는 사람은 지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지는 사람은 이기는 것도 은근히 염려하여 아량을 베풀지 못한다. 이기는 사람은 과정을 중시하고 지는 사람은 결과에 관심을 쏟는다. 지는 사람의 삶의 방식은 다른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대인관계에서 사람을 만나면 333법칙이 있다고 한다. 3분 이내에 상대에게 3가지 이상의 칭찬을 하고, 상대의 말에 3번 이상 맞장구를 친단다. 세상에는 칭찬 릴레이 같은 행사도 있다. 칭찬받을 만한 사람을 발견하고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여 칭찬 잔치를 벌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별로 칭찬할 점이 보이지 않더라도 사소한 것이라도 칭찬해주는 일이 중요하다. 관계가 아름답게 개선될 뿐 아니라, 칭찬을 받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으로 개선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검찰개혁이 화두가 되고 있다. 검찰조직이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고 한다. 집권세력의 시녀 노릇을 한다는 염려도 있다. 오죽하면 상투적으로 성역 없는 수사를 말하고, 오죽하면 대통령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하라고 주문했겠는가. 성역 없는 수사가 안 되었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미흡했다는 뜻이리라.

옥상에 누수현상이 있어 지붕을 하나 더 만들었더니 지난 태풍에 그 지붕이 또 탈이 났다. 그냥 방수작업을 야무지게 할 걸 그랬다 싶다. 검찰개혁도 모든 검사가 어떻게 야무지게 직무를 수행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근본일 것이다. 검찰개혁을 두고 서로 주고받는 독기 서린 공방과 싸늘한 눈초리에 국민은 참 피곤하다. 어린애들도 아니고 뭐 저런 사람들이 있는가 싶을 정도다. 지붕 위의 지붕(屋上屋)도 좋지만 어떤 검사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조직이 되었으면 좋겠다. 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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