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가벼운 것이라서
꿈이라도 무겁게 꾸자고
밥과 꽃, 칼과 촛대를
늘 머리맡에 두고 잔다

아침 약을
해 저문 뒤에 먹고
모아두었던 기침을 풀어
흐린 들창이나 뚫는다

어디든 나서고 싶지만
어디든 가보고 싶지만

생명이란 오래 눌려 배긴 결대로
풀어지고 해지는 것

꿈이란 끝자리 미열에 지나지 않는다


<감상> 우리는 생명이 진동하는 삶과 무거운 꿈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한다. “밥과 꽃, 칼과 촛대”, 곧 현실과 이상을 머리맡에 두고 무거운 꿈을 꾸고 싶어한다.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세상이 곧 헛된 꿈인 줄 결코 인식하지 못한다. 유일하게 저녁만이 삶과 꿈이 한 빛깔이고, 삶이 죽음 쪽으로 놓여 있음을 가르쳐 준다. 이것이 저녁이 존재하는 이유다. 생명은 나이테처럼 배긴 결대로 풀어지고 해지는 것인데, 그 결대로 살지 않고 이탈하려는 꿈은 미열에 그친다. 자신에게 주어진 결을 무시해도, 어둠과 죽음을 무시해도 저녁의 공평함은 영원히 이어진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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