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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I Love 미술] 구도의 흔적, 지홍(智弘) 박봉수(朴奉洙)
[김진혁의 I Love 미술] 구도의 흔적, 지홍(智弘) 박봉수(朴奉洙)
  • 김진혁 학강미술관장
  • 승인 2020년 12월 02일 16시 20분
  • 지면게재일 2020년 12월 03일 목요일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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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학강미술관장
김진혁 학강미술관장

1970년대는 한옥과 국민주택이라고 불리 우는 한국식 양옥이 흔한 시절 이였다. 그러다 보니 약간의 여유가 있는 집은 유화나 수채화류의 서양화보다 동양화나 서예 문인화 작품을 몇 점씩 벽에 걸고 감상하는 것이 동양문화의 문사철(文史哲)에 대해 공감하고 과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대구시내에도 표구사나 작은 상업 화랑이 늘어 갈 때이다. 표구사에 가면 ‘지홍’이라고 수결한 수묵화를 볼 수 있었다. 멧돼지를 표현한 그림과 잉어그림을 특장으로 한 것이 많이 보였다. 그래서 그냥 붓의 용필이 능숙하고 고답적인 표현을 하는 작가의 동양화라고 생각하며 지나쳤다.

1979년 우연한 기회에 지홍 박봉수의 화집을 보았다. 효성여자대학(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발행한 도록이었다. 두툼한 화집을 보고 강한 충격을 받았다. 전에 알고 있던 고답적인 동양화가가 아니라 다양한 채묵법과 표현에 놀라움을 가졌다. 수묵화, 채색화, 현대추상화, 개념미술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양화의 전형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 기억된다.

지홍 박봉수 작 ‘초례상(1935)’

그러다 한동안 잊고 지냈다. 시간이 흘러 경매나 거간상을 통하여 신선도나 불화류의 지홍 수묵채색화가 가끔씩 선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며칠 전 동네에 위치한 상업화랑에 가보니 영우구락부에서 1986년에 펴낸 박봉수 화백의 도록이 보였다. 저평가된 그가 생각나 도록에 나오는 많은 작품들을 세밀하게 살폈다. 풍류의 멋과 참선에서 우러나온 신라정신인 한국의 얼을 나타낸 것이라고 느껴졌다. 그림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사들과의 교류에 조금은 놀랐다. 문화예술계 인사는 물론이고 정치·경제·사회계의 거물들과도 인연을 가지고 살아온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시에 군인이었던 노태우 장군의 이름도 있었다.

박봉수는 경주 사정동 국당마을에서 1916년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독학으로 익혔다. 15세 때 ‘시집가는 날’을 그려서 일찍부터 두각을 보였다. 약관 19세에 조선미전에 입선하며 화가로 데뷔하였다. 일본에서의 사숙으로 수묵채색법을 익혔고 중국 베이징에서는 예술학원을 다니며 수묵화와 서예 등을 연구하였다. 이후 경주로 귀향하여 미술교사로 몇 년을 보냈다. 교사직을 그만둔 후부터 전업 작가로서 대구와 경주를 오가며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1970년대에는 유럽과 아프리카 등을 순방하며 미술기행문을 지역의 신문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는 대구의 재력 있는 집안이나 사무실에는 지홍 화백의 수묵화를 많이 볼 수 있었다. 1979년에 서울로 이주하여 적극적으로 중앙화단에서 활동하였다. 시인 구상과 친분이 있었다.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대담한 필선과 웅혼한 표현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한다고 하였다. 오히려 재능이 너무 많아 한 가지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동서양의 미학을 넘나드는 지홍 식 회화라고 하였다. 올해 서울의 금산갤러리에서 유작전이 열렸다. 보도자료를 검색해 보면 1930년 대 벌써 수묵추상을 시도하였고 불교의 참선을 통해 독창적 미학을 확립하며 한국추상미술에 중요한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그와 교류를 가진 수화 김환기는 “지홍의 그림에 대한 발상형식은 명상적인 동양의 도 사상을 바탕하고 있다. 작업이 보여주는 미분화 상태의 혼돈 속에서 추상적 묵흔을 조형화하고 다시 의도적 형상을 이루는 분화를 하는 표현법은 독창적이다. 디테일을 외면한 것 같은 무기교의 대담하고 투박한 선을 오히려 생명력이 넘치는 강렬한 인상을 준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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